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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

마르크 샤갈: 예술가, 몽상가, 혁신가, 2부 중 1부

2020-02-13
진행 언어:French(Français)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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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ST: 안녕하세요. 평화를 사랑하는 여러분. ‍프랑스의 문화 도시 ‍몽펠리에의 ‍오레아나입니다. 프랑스인은 여러분과 함께 ‍재능으로 세상을 밝히는 ‍예술가들에게 감사합니다. 『마르크 샤갈 ‍예술가,몽상가 ‍혁신가 2부 중 1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와 함께 ‍러시아계 프랑스인 예술가 ‍마르크 샤갈은 ‍20세기 시각 예술에서 ‍유럽 모더니즘 ‍거장의 한 명으로 ‍환영받습니다. 야수파,입체주의 ‍초현실주의,상징주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관찰한 샤갈은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표현을 개발했습니다. 사랑과 종교, ‍나중의 평화와 인류애는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였고 ‍그는 그 주제들을 ‍꿈결 같고 서정적이며 ‍은유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오랫동안 ‍혁신적인 다작하는 ‍경력을 누렸습니다.

 

‍샤갈은 전설적인 생애 동안 ‍수많은 명망 있는 ‍영예와 상을 받았습니다. 여기에는 ‍1977년에 ‍프랑스 정부의 ‍최고의 시민 영예인 ‍레지옹 도뇌르 ‍대십자훈장, ‍예루살렘 시로부터 받은 ‍야키르 예루살렘 상‍(예루살렘 명예 시민), ‍미국 문학예술 아카데미 ‍명예회원, ‍‍벨기에 과학 문학예술 ‍왕립학교 회원, ‍유럽 문화재단의 ‍‍에라스무스 상, ‍미국 여러 대학의 ‍명예 박사학위 등이 ‍있습니다.

 

‍마르크 샤갈의 작품은 ‍세계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에 전시됐습니다. 1967년 ‍루브르 박물관은 샤갈의 ‍대형 그림 17점과 ‍40점에 가까운 ‍고무수채화가 전시된 ‍『성서의 메시지』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모두 샤갈이 프랑스에 ‍기증한 작품들이죠. 후에 국립 샤갈 ‍성서의 메시지 미술관이 ‍그의 성경 주제 작품을 ‍기리기 위해 프랑스 ‍니스에 세워졌습니다. 마르크 샤갈은 ‍살아있는 동안 ‍루브르 박물관에 작품을 ‍전시한 소수 예술가의 ‍한 명이었습니다. 또 많은 국가가 ‍샤갈을 기념하여 ‍그의 걸작을 ‍사진으로 담아 ‍기념 우표를 발행했습니다.

 

      마르크 샤갈은 어떻게 ‍예술가가 되었을까요? ‍처음으로 가봅시다. 그는 1887년 7월 6일 ‍현재 벨라루스의 비테프스크 ‍근처 작은 마을에서 ‍모이셰 자카로비치 세갈이란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9명의 아이 중 ‍장남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이 ‍하시드계 유대 신앙을 ‍따른다는 점을 볼 때, ‍그의 가족에서 ‍종교는 중요했고, 이는 ‍이후 그의 예술에 영원한 ‍영감의 원천이 됐습니다. 

 

‍초등교육으로 ‍마르크는 지역 유대인 ‍종교학교에 다니며 ‍히브리어를 배웠습니다. 13세의 나이로 ‍러시아 고등학교에 ‍입학하는데,이 곳에서 ‍샤갈의 가슴에 예술을 ‍향한 열정이 싹틉니다. 그의 집안에는 ‍예술적 성향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지만 ‍그는 자신이 예술에 ‍매료되는 것을 느꼈고 ‍예술가가 되려는 열정은 ‍가족들의 이해와 ‍지지를 얻었습니다. 

 

‍      정식 예술 교육은 ‍비테프스크의 저명한 ‍사실주의 화가 ‍예후다 펜이 친절하게 ‍샤갈을 자신의 미술학교 ‍학생으로 들이며 시작됩니다. 소년의 가족은 수입이 ‍아주 적었기 때문에 ‍펜 씨는 친절하게도 ‍무료로 다니게 허락했죠. 그러나 마르크는 곧 ‍화실의 학문적인 ‍가르침은 ‍예술 발전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길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같은 해에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사하여 ‍즈반체바 회화학교에 ‍다니며, 유명한 유대인 ‍장식미술 디자이너 ‍레옹 바크스트의 ‍지도를 받습니다. 당시 유대인에게는 ‍많은 제약이 ‍있었지만, ‍레옹 바크스트는 어린 ‍마르크에게 영감을 주며, ‍성공한 유대인 예술가의 ‍좋은 모범이 되었습니다. 

 

‍1910년 공부를 더 하러 ‍샤갈은 파리로 이사했습니다. 당시 파리는 국제적인 ‍예술과 문화의 중심지로 ‍입체주의가 ‍전위 예술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카데미 ‍드 라 팔레트에 입학해 ‍여가 시간에는 화랑과 살롱을 ‍방문하고,루브르 박물관에 ‍가서 과거 거장들의 ‍작품을 공부했습니다. 생동감 있고 짜릿한 ‍예술적 분위기와 ‍문화 활동, ‍파리의 기타 모든 것이 ‍젊은 예술가를 자극했죠. 마치 새로운 지평선의 ‍신나는 세상을 발견한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자신의 시각언어를 찾고 ‍자신만의 표현 스타일을 ‍형성하는 동안 ‍샤갈은 열렬히 관찰하며 ‍보고 배운 것들을 ‍살펴나갔습니다.

 

HOST: 통찰력 있는 시청자 여러분,잠시 쉬며 건설적인 메시지를 듣겠습니다. 곧 돌아옵니다. 수프림 마스터 TV에 채널을 고정해주세요!

 

      뛰어난 러시아계 프랑스인 ‍예술가 마르크 샤갈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계속합니다. ‍신나는 파리의 열기에도 ‍불구하고 ‍‍마르크는 자신의 고향과 ‍뿌리를 가슴 깊이 간직하고 ‍비테프스크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유대 모티브의 ‍작품을 그렸습니다.

 

‍1911년 그는 ‍『나와 마을』을 그렸습니다. 현재 미국 뉴욕의 ‍현대 미술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입니다. 이 아름다운 걸작은 ‍샤갈의 향수와 ‍조국에 대한 갈망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이 그림은 마을 생활의 ‍목가적인 풍경을 ‍묘사합니다.

 

‍그림의 오른쪽 상단에 있는 ‍한 줄로 늘어선 집들과 ‍작은 교회는 ‍먼 지평선을 나타냅니다. 그림 속의 공간을 대부분 ‍차지하는 두 모습, ‍남자와 염소는 서로 ‍진지하게 응시합니다. 아마도 사람과 ‍동물 세계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나타내는 듯합니다. 남자는 기독교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생기와 희망으로 가득한 ‍묘목을 들고 있습니다. 입체주의와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몇몇 요소가 보이지만 ‍그 방식은 틀림없는 ‍샤갈의 표현입니다. 그는 생생한 색채와 ‍평화로움, ‍선과 형상 안의 공간으로 ‍작품에 온유함과 ‍평온함을 더합니다. 이 주제는 그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죠. 

 

‍샤갈은 그림 외에도 ‍시를 썼습니다. 미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그의 시는 종종 조국에 대한 ‍사랑을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나의 먼 고향』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 안에서 울린다.

      먼 도시

      하얀 교회들 ‍

      유대교의 회당,

      문이 ‍열려있다.

      하늘이 피어난다.

      인생은 덧없이 흘러간다.

 

샤갈은 1944년에 ‍출판한 공개서한에서 ‍『나의 도시 ‍비테프스크』를 통해 ‍조국에 대한 자신의 ‍깊은 사랑을 다시 ‍표현합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살지 ‍않지만, 당신의 정신과 ‍성찰로 숨 쉬지 않는 ‍그림은 단 한 점도 ‍없습니다』 ‍

 

‍그는 파리의 즐거움을 ‍사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가족과 유대 공동체, ‍특히 약혼자인 ‍벨라 로젠펠트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 갔습니다. 그는 1914년 6월, ‍베를린의 더 스톰 갤러리에서 ‍첫 개인 전시회를 가진 후 ‍비테프스크로 돌아갑니다. 전시회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샤갈은 벨라의 부모님을 ‍설득해 딸과의 결혼을 ‍허락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은 승낙하죠. 1915년 ‍샤갈과 벨라는 결혼합니다. 그러나 ‍당시 유럽의 ‍어려운 상황으로 인해 ‍러시아 국경이 폐쇄되어 ‍샤갈은 1922년까지 ‍러시아와 소련 벨라루스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이 시기에 샤갈은 ‍엄청난 열정으로 ‍비테프스크 예술대학을 ‍설립하는데, ‍이후 이 학교는 ‍『소련에서 ‍가장 뛰어난 예술학교』로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문제로 ‍노력이 무색해지며 ‍샤갈은 다른 일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말라호프카 교외에 ‍있는 난민 고아들을 ‍수용하는 유대인 ‍소년보호소에서의 ‍교직을 수락합니다. 

 

‍어려운 재정적, ‍정치적 여건이었지만 ‍이 시기에 ‍샤갈은 벨라와 함께 누린 ‍행복한 삶을 반영하는 ‍가장 유명하고 ‍밝은 작품 몇 점을 ‍그렸습니다. 두 사람의 손녀 벨라 마이어는 ‍이 둘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

 

(M): 포옹은 사랑의 기본적인 표현으로서 샤갈 작품의 중심에 있습니다. 벨라는 그의 삶에 첫사랑이었고 위대한 영감이었죠.

Bella Meyer: 안내자고 뮤즈였죠. 할머니는 그가 꿈꾸게 하고 ‍그림을 그리게 했어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예요.

 

HOST: ‍『생일』은 ‍마르크와 벨라가 결혼한 ‍1915년에 그려진 ‍유화 작품으로 벨라가 ‍영감을 준 작품의 하나입니다. 단순하지만 깨끗한 곳에서 ‍여성은 아마도 ‍생일 꽃다발을 ‍꽂을 꽃병을 찾아 ‍뛰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남성은 사랑스럽게 그녀 ‍위로 떠서 기습 키스로 ‍그녀를 붙잡습니다. 이 작품은 샤갈과 ‍사랑하는 벨라의 ‍행복한 순간과 함께 ‍샤갈의 삶에서 ‍사랑에 대한 ‍그의 즐거운 감정을 ‍그린 것이 분명합니다.  ‍

 

샤갈의 작품엔 자주 ‍사랑하는 아내가 보입니다. 벨라는 그의 많은 ‍그림에서 신부이자 ‍뮤즈였습니다. 샤갈은 자서전인 ‍『나의 삶』에서 ‍벨라와의 첫 만남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녀의 침묵은 내 것이고 ‍그 눈은 내 것이다. 그것은 마치 그녀가 ‍내 어린 시절과 현재, ‍미래를 모두 아는 것 같고 ‍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것만 같았다』 ‍

 

‍샤갈의 그림에서 꽃은 ‍또 다른 계속된 ‍주제의 하나입니다. 정원사는 아니었지만 ‍그는 자신의 ‍예술을 통해 꽃에 대한 ‍찬양을 표현했습니다.

 

(M): ‍꽃은 모든 창조물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의 ‍하나입니다. 꽃은 1920년대에만 ‍마르크 샤갈의 작품에서 ‍중요한 주제가 됐죠. 그는 러시아나 어릴 때는 ‍꽃을 본 적 없다고 했어요. 하지만 프랑스에 가면서 ‍꽃을 보게 됐습니다. 샤갈의 꽃 그림은 단지 ‍아름다움에 관한 게 아니에요. 그건 그에게 더 중요한 ‍뭔가를 의미해요.

Bella Meyer:: ‍꽃은 항상 다발로 있어요. 이건 지구와 천국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생명의 나무처럼 보여요. 영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M): 그의 작품에는 ‍일종의 보편성이 있어요. 이는 문화를 가로질러 ‍즉시 이해할 수 있는  주제로 나아갑니다.

Bella Meyer: ‍그가 진정으로 믿는 것,‍그가 느끼는 것, ‍소통하려고 하는 것 ‍사이에는 장벽이 없어요. 

 

HOST:  즐거운 시청자 여러분 ‍2부작 시리즈의 1부, ‍『마르크 샤갈: ‍예술가,몽상가 ‍혁신가』를 즐겁게 ‍시청하셨기를 바랍니다. 토요일의 2부도 ‍많은 시청 바랍니다. 주목할 뉴스에 이어 ‍『칭하이 무상사의 ‍긴급 요청: 세상을 구하고 ‍비건 세상을 위해 기도하자 ‍2020년 2월 6일』이 ‍방영됩니다. 삶의 매 순간이 신의 은총으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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