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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말씀

세계 주요 종교와 영성 단체의 경전과 인터뷰를 통해 깨달음에 관한 폭넓은 주제에 대해 알아보세요. 비슈노이 신앙, 불교, 까오다이교, 기독교, 유교, 에세네파, 그리스 철학, 힌두교, 호아하오교, 이슬람교, 자이나교, 유대교, 마니교, 묵가, 장미십자회, 신도, 시크교, 수피교, 도교, 신지학, 티베트 불교, 톨텍 신앙, 우주 백색형제단, 토착 신앙과 조로아스터교 등에 세계의 여러 영적 전통에서 유래한 가르침을 전해드립니다. 칭하이 무상사가 지난 30여 년간 세계 각지에서 구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삶의 의미, 내면의 평화와 다른 의미 있는 주제들에 대한 강연 속에 담긴 귀중한 영적 지혜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보세요.

찰스 테이즈 러셀: 성서 연구 - 시대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 5장, 2부 중 2부

00:12:54

찰스 테이즈 러셀: 성서 연구 - 시대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 5장, 2부 중 2부

러셀 목사로 알려진 찰스 테이즈 러셀 씨는 미국의 종교 지도자, 작가이며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미국의 성경 연구 운동에서 유래한 단체인 여호와의 증인이란 기독교 교파의 창시자였습니다. 성경 연구 운동은 러셀 씨의 가르침과 사역에 기반합니다. 그는 성서를 분석적으로 해석하고 장래에 지구에 황금시대를 이루도록 설교하는 일에 자신의 삶과 자산을 바쳤다고 합니다. 러셀 씨의 성경 연구에 따르면 하나님의 왕국이 그리스도를 통해 지구를 다스린다고 합니다. 1879년 러셀 씨는 지금은 파수대라 부르는 성경 출판물을 시작했으며 그 후에 종교적 출판물을 배포하기 위해 워치타워 성서책자 협회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1916년 죽을 때까지 그 협회의 회장으로 있었습니다. 러셀 씨의 책과 소책자는 35개 언어로 천6백만 부가 발행되어 널리 읽혔습니다. 게다가 그의 매주 설교는 수천 개의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저서는 7권으로 구성된 『성서 연구』입니다. 이제부터 성서에 대한 매혹적인 분석을 찰스 테이즈 러셀 씨의 『성서 연구』 1권 『시대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살펴보며 계속 보내드립니다. 러셀 씨는 밝혀진 신비를 계속 설명하며 모두의 내면에 있는 그 신비의 화신이신 그리스도를 세상이 받아들일 때 그 계시가 이루어질 시간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예수님을 우리의 머리이자 선조로 높이셨듯이』 이것은 정말 놀라운 메시지인데 우리의 크고 높은 소명을 묻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예언자들이 우리에게 내릴 은총(사랑이나 축복)을 선언하는데 아주 유창함을 발견합니다. 상징과 비유, 그리고 지금까지 말씀들이 이제 빛나면서 「좁은 길」에 그 빛을 비춥니다. 그 안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 모임이 지금 밝혀진 상을 받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전에는 생각지 못한 신비였고 하나님은 한 구원자뿐 아니라 많은 회원으로 이루어진 구원자를 세우려고 하십니다.   이것은 복음 시대에 바친 신자들이 얻는 특권인 「높은 소명」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연인인 동안에 이를 밝히려 하지 않고 그들이 기름 부음-새 본성이 생길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바울의 설명에서 우리는 이제 「새로운 생명체」만이 높은 소명을 알아채거나 이해함을 압니다. 그는 말합니다. 「우리는 신비 속에서 하나님 지혜와 하나님이 세상 앞에 우리의 영광으로 정하신 숨겨진 지혜(계획)까지 말합니다. 이 세상의 왕자 중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기록되었듯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걸 우리에게 보이셨다」   갈라디아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울은 모든 신비를 공개하여 아브라함 언약이 어떻게 이행되는지 보여줍니다. 그는 이스라엘에 주신 율법이 원래 언약과 다르지 않으며 모든 나라를 축복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그리스도임을 보여줍니다. 곧이어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은 이를 포함하여 그리스도에게 이미 언급한 사상을 전하며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예수님과 함께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아브라함이 만든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이니라」 같은 추론에 따라 그는 아브라함이 여호와(이스라엘의 신)의 상징이며 사라는 언약이나 약속의 상징이고 이삭은 그리스도 (머리와 몸)의 상징임을 보여줍니다.   이어서 덧붙였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이삭처럼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획은 복음 시대가 그리스도의 진화를 시작할 때까지 상징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이 늘 비밀에 싸인 것은 아니며 지복천년의 새벽이 인간에게 하나님의 완전한 빛을 가져오고 「주님의 지식은 온 땅을 채울 것입니다」 자신의 날개로 치유하고 무지의 어둠을 없애며, 떠오르는 정의의 태양은 지복천년 영광 속의 그리스도입니다. 머리뿐이 아니라 그분 몸의 지체도 그러합니다. 기록되었듯이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가 나타나실 때 우리도 그분과 함께 영광 속에 나타나리라」   「그때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이제 그리스도의 정신을 받음으로 새 마음을 얻은 자를 제외한 모두에게는 우리가 믿는 약속과 우리가 소중히 하는 소망이 상상처럼 보이고 그것을 인정하거나 따라 행하는 것 불가능해 보입니다. 다가올 시대에, 하나님이 「모든 육체에 성령을 쏟아부으시는」 지금 시대에 그분의 「종과 하녀들에게」 성령을 부으시면 이제 「작은 회중」이 쥐고 있던 약속을 모두가 이해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새로운 질서 아래 완전한 인간 본성을 향하는 그들의 소명은 충분히 만족할 것이며 그들에게 본성의 변화보다 더 바람직해 보일 것입니다.   그러면 「비밀」은 드러날 것입니다. 세상은 그것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었고 우리 안 그리스도의 영 - 하나님의 육화임을 보면서 그들이 지금까지 오해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미친 것도 바보도 아니며 우리가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좇을 때 영원하며 더 좋은 쪽을 택한 걸 알게 됩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의 신비가 (종말론적 사건 때 울리는) 일곱 번째 (상징적인) 나팔소리가 울리는 동안 완성될 것입니다. 이것은 신비에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며 적용됩니다. 하나님의 계획의 신비 또는 비밀의 특징이 알려지고 명확하게 보일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신비」와 그 계획의 구현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둘 다 완성됩니다.   숨겨진 계획인 비밀이 그리스도의 몸에서 지체의 전체적이고 완전한 숫자를 찾을 것이고,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이 완성될 것입니다. 그 계획에서 비밀을 유지할 대상이 더는 없음므로 신비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신비의 위대함은 오랫동안 비밀이었고 약속과 상징 속에 숨겨져 있었으며 이 신비에서 교우로 부르는 자에게 놀라운 은총이 주어지며 우리에게 그 완성을 따르는 일을 제안합니다. 6천 년 동안 인류에게 기대와 희망을 품었던 여호와께서 하신 그런 위대한 준비에 걸맞은 엄청나고 위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신비의 베일이 벗겨지고 축복의 소나기가 내릴 때 우리가 세상에 대한 축복에서 기대하지 못할 것이 무엇일까요. 이것을 위해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고통 속에 함께 신음하고 괴로워하며 이 신비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의 출현과 그들 모두가 축복받을 약속된 씨앗을 기다립니다』
지혜의 말씀
2020-06-04   30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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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4

찰스 테이즈 러셀: 성서 연구 - 시대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 5장, 2부 중 1부

00:13:31

찰스 테이즈 러셀: 성서 연구 - 시대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 5장, 2부 중 1부

러셀 목사로 알려진 찰스 테이즈 러셀 씨는 미국의 종교 지도자, 작가이며 설교자였습니다. 그는 미국의 성경 연구 운동에서 유래한 단체인 여호와의 증인이란 기독교 교파의 창시자였습니다. 성경 연구 운동은 러셀 씨의 가르침과 사역에 기반합니다. 그는 성서를 분석적으로 해석하고 장래에 지구에 황금시대를 이루도록 설교하는 일에 자신의 삶과 자산을 바쳤다고 합니다. 러셀 씨의 성경 연구에 따르면 하나님의 왕국이 그리스도를 통해 지구를 다스린다고 합니다. 1879년 러셀 씨는 지금은 파수대라 부르는 성경 출판물을 시작했으며 그 후에 종교적 출판물을 배포하기 위해 워치타워 성서책자 협회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1916년 죽을 때까지 그 협회의 회장으로 있었습니다.   러셀 씨의 책과 소책자는 35개 언어로 천 6백만 부가 발행되어 널리 읽혔습니다. 게다가 그의 매주 설교는 수천 개의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의 저서 중 가장 유명한 저서는 7권으로 구성된 『성서 연구』입니다. 오늘 우리는 찰스 테이즈 러셀 씨의 『성서 연구』1권에서 『시대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소개하겠습니다. 러셀 씨는 5장에서 성서를 통해 밝혀진 시대에 관한 오랜 비밀을 묘사합니다.   ♧성경 연구 1권 5장: 『시대와 세대들에게 감춰졌던 신비가 이제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나다』 인류가 악의 통제 아래 있는 동안 하나님은 도래할 구원자를 통해 인류를 되돌리고 축복하려는 당신 목적을 거듭 표명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구원자가 되어야 할 사람은 4천 년간 수수께끼였고 기독교의 초기, 즉 복음 시대에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야 분명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의 첫 부모인 아담과 이브가 잃었던 삶과 에덴에서 행복한 시절을 돌이켜 보면서 그들이 죄에 대한 공정한 벌로 슬픔으로 가득했고, 여성의 씨앗이 뱀의 머리를 밟는다는 모호한 진술에서 나온 것 외에는 일말의 희망도 없음을 봅니다. 이어지는 전개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이 우리에게는 의미심장하지만 그들에게는 희미하고 가물거리는 빛이었지요.   거의 2천 년이 지났지만 그 이행의 증거는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지만 여전히 모세와 여호수아, 다윗, 솔로몬과 같은 위대한 구원자를 찾았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났을 무렵 모든 사람은 메시아와 이스라엘 왕의 오심과 이스라엘을 통해 세계의 왕이 오심을 고대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제물로 오셨을 때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들의 방문할 때를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그의 직전 제자조차 몹시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무덤에서 일어나신 걸 알았을 때 그들의 시든 희망이 되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이까?」는 예수님이 승천했을 때 그분 사도들의 질문이었습니다. 왕국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은 주로 비유와 말씀임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것이니라」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랬는데도 그들은 행해진 일과 원래 언약과의 관계를 명확하고 완전하게 이해를 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완전하고 명확하게 이해하기도 전에 그들은 하나님의 입으로 쓰였던 것으로 보이며 그들의 영감을 받은 말은 아마도 자신들이 완전히 이해한 것보다 더 명확하고 깊이 있는 진리의 표현일 것입니다. 야고보는 신의 섭리 속에서 베드로를 통해 첫 이방인 개종자에게, 바울을 통해서는 모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며 이 시대 동안에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사랑받는다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예언을 들여다보고 그리 쓰인 것을 알았습니다. 이 복음 시대의 역사가 완료되면 현세의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이 이행될 것이라 말했습니다.   점차 오랫동안 숨겨진 위대한 신비를 몇몇 성도들, 하나님의 특별한 「친구들」이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은 여러 시대와 세대에 숨겨졌던 이 신비가 이제 성도들에게 드러나게 된 것은 「너희 안의 그리스도, 영광의 희망」이라고 선언합니다. 이것은 모든 이전 시대에 숨겨져 왔으며 특별한 계급인 성도들, 즉 성스러운 신자들을 제외한 모두에게 여전히 숨겨진 하나님의 위대한 신비입니다. 「너희 안의 그리스도」는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심을 알며, 따라서 예수님이 그리스도- 구세주임을 인정하는데, 그리스도란 말은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 봉헌된 신자에게 그 기름 부음이 우리 안에 거한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이 복음 시대의 성도들은 기름 부음을 받은 모임으로, 하나님께 왕과 지도자로 기름 부음을 받고 그들의 으뜸이자 주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여호와(이스라엘의 신)의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가 되었습니다. 우리 역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요한의 이 가르침과 일치하도록 바울은 오래전부터 비밀로 지켜진 이 신비를 우리에게 단언합니다. 그러나 이제 성도들은 인간의 몸은 하나나 많은 지체가 있듯이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하나가 아니라 많음」을 압니다. 몸에 딸린 지체는 많지만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기름 부음을 받은 자도 그러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몸(또는 다른 형상으로 표현된 당신의 신부)인 교회의 머리, 혹은 주인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고 그들은 함께 약속된 「씨앗」- 위대한 구원자를 구성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인간 몸의 형상 아래 그리스도는 우리의 친밀한 관계를 아름답게 보여주십니다. 예수님도 이런 일체성을 가르치며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주 예수와의 일체성은 기름 부음을 받은 모임인 그리스도의 일원으로서 피라미드의 형상으로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머릿돌은 그 자체로 완벽한 피라미드입니다. 다른 돌들은 그 밑에 놓이며 머릿돌의 모든 특징적인 선과 조화를 이룬다면 전체 덩어리는 완벽한 피라미드가 될 것입니다.   이는 「씨앗」- 그리스도의 일원으로 우리의 위치를 정말 아름답게 보여줍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돌로서 우리 머리와 완벽하게 조화하니 완벽합니다. 그분과 떨어져 있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완전한 분이신 예수님은 크게 높임을 받으셨고, 이제 우리는 그분의 본보기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하나님의 건물로 지어지도록 자신을 그분께 바칩니다. 보통의 건물에는 으뜸인 주춧돌이 없지만 우리 건물에는 하나의 으뜸 주춧돌인 「머릿돌」이 있습니다. 우리는 곧 「머리」인 예수님과 그분의 몸인 「교회」의 결합이 완성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는 매우 사랑을 받으며, 위대한 수석 건축가의 지시에 따라 많은 두드림과 다듬질을 견뎌야 합니다. 많은 변화를 겪어야 하고 예수님의 본보기를 따라야 합니다.   우리에게 부여된 건축가의 능력과 상상력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서 그분의 뜻이 이루어짐을 반대하거나 훼방하는 삐뚤어진 의지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처럼 되고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의 옷을 입으십시오. 신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하면 은총을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예수님을 우리의 머리이자 선조로 높이셨듯이』
지혜의 말씀
2020-06-03   76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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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3

자가트구루 아디 상카라차리야의 찬가: 시바난다 라하리, 2부 중 2부

00:15:40

자가트구루 아디 상카라차리야의 찬가: 시바난다 라하리, 2부 중 2부

『오, 주여, 깨달은 뒤에도 진실은, 지바(개인의 영혼)와 브라만(신)에 진정한 차이가 없습니다. 당신은 내게 속하지 않으나 나는 당신께 속합니다. 파도가 바다에 속하지만 바다는 파도가 아니듯이』 헌신적인 자가트구루 아디 샹카라차리야가 비슈누 신께 바친 이 기도는 신을 향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8세기 중인도에서 태어난 자가트구루 아디 샹카라차리야는 일찍부터 영적 삶에 관심을 보였죠. 8살 때 모든 베다 경전을 읽고 이해했습니다. 영적 깨달음을 얻기 위한 출가를 허락받은 후 그는 구루 고빈다 바가바트파다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샹카라차리야는 고대 가르침인 『아드바이타 베단타』와 『바가바드 기타』 그리고 10권의 주요 우파니샤드의 주석서를 집필했습니다. 그는 스마르타 전통의 창시자로 힌두교의 여러 학파를 통합하고 내면의 자아(아트만)와 최고 신(니르주나 브라만) 사이의 합일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샹카라차리야는 크리슈나신과 시바신께 헌정하는 72개 찬가를 지었습니다. 『천 가지 가르침』을 의미하는 『우파데샤 사하스리』도 저술했죠. 영적 수행과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인도 전역을 여행하며 현재도 여전히 활동하는 힌두교 수도원 네 곳을 설립했습니다. 32살에 자가트구루 샹카라는 비데하 무크티, 즉 육신에서 자유를 얻으며 지구에서 임무를 완수했다고 합니다. 『시바난다 라하리』 즉 『시바 지복의 파도』는 아디 샹카라가 저술한 종교 찬가 중 하나입니다. 이제 여러분께 『시바난다 라하리』를 계속 소개하겠습니다.   ♧탐욕과 질투로 가득 차서 다른 사람의 재산을 훔치려고 애쓰고 부잣집에 들어가려 한다네. 내 마음은 여러 방향으로 배회하고 있으니 오, 모든 도둑의 신이시여, 모든 곳에 계신 샨카라여, 내가 이 도둑의 마음을 어떻게 용서할까요? 그러니 당신이 다스리시고 이 무고한 이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께 경배를 드리면 당신은 곧 내 앞에 나타나고 모든 즐거움을 주십니다, 오, 어디에나 계신 신이시여. 하지만 내게 숭배의 보상으로 창조주의 자리나 비슈누 신의 자리를 허락하신다면 나는 주인을 다시 보려고 하늘을 나는 새가 되거나 동물이 되어 땅속 깊이 파고들겠지요. 당신을 보지 못하는 이 슬픔을 어찌 견딜까요? 오, 모든 곳에 계신 샨카라신이시여.   언제 카일라스산에서 내가 살 수 있을까요? 당신 시종들과 함께 보석이 박힌 당신의 금빛 저택에서. 오, 신이시여, 행복을 주시는 분이여, 손을 올려 꼭 잡은 채 당신 뜻에 따릅니다. 오, 어디에서나 계시고, 오, 여신과 함께하시고, 오, 스승이시며, 오, 무엇보다 높고, 오, 선하신 신이시여, 즐겁게 찬양합니다. 『신이여, 구해주소서』 마치 창조주의 일 겁이 일 초인 것처럼 시간을 보내소서. 언제 당신의 신성한 발을 볼 수 있을까요? 오, 산들의 왕이시여, 잡을 수 있다면 제 머리 위에, 눈에, 가슴에 올려서 품에 안고 향기로운 그 연꽃 향을 맡으며 브라마와 다른 이들조차 얻지 못한 황홀경을 얻을 겁니다.   당신 손안에 황금산이 있고, 가까이엔 재물의 신이, 당신 집에는 소원을 들어주는 나무와 모든 것을 이루어주는 소가 있고 마음속 어떤 소원도 모두 들어주는 귀중한 돌과 다른 많은 것이 있습니다. 당신 머리 위엔 차갑게 빛나는 달이 있고 세상의 모든 선은 당신 발 아래 있으니 나의 신이시여, 제물로 바친 나의 마음을 빼면 무얼 드릴 수 있을까요? 내가 당신이 되는 묵티(해탈)는 당신을 숭배함이고, 내가 당신께 가까이 가는 묵티(해탈)는 당신을 노래하고 당신을 『시바』와 『마다바』로 부름이고, 당신과 함께 하는 묵티는 내면으로 당신과 함께하는 당신 귀의자들과 달콤한 대화입니다. 당신과 영원히 결합하는 묵티는 생각함입니다.   우주 그 자체인 당신의 움직임과 변치 않는 형태는 영원하며, 그렇기에 이 태어남으로 이 모든 걸 얻습니다. 오, 바바니 신의 배우자이신 시바 신이여, 이 모든 것에 감사 드립니다. 당신의 연꽃 같은 발에 헌신을 바칩니다. 가장 위대한 당신에 대해 명상합니다. 나의 신께 귀의합니다. 오, 비부여, 당신께 간청하니 신들이 항상 찾는 당신의 자비롭고 신성한 눈으로 축복을 주소서. 오, 우주의 스승이시여, 행복한 삶의 길을 가르쳐주소서. 태양과 달리 저는 당신의 신성한 성상에 입힐 천 개의 광선이 없습니다. 비슈누 신과 달리 저는 모든 곳에 계신 당신을 숭배할 능력이 없습니다. 바람의 신과 달리 백단향을 퍼뜨리는 그런 존재처럼 당신을 최고로 섬길 방법이 없습니다. 불을 다루는 인드라 신과 달리 당신께 바칠 음식을 요리할 능력이 없습니다.   히란야가르바와 달리 저는 금 그릇을 바칠 능력이 없습니다. 오, 어린 초승달을 걸친 신이시여, 오, 만물의 신이시여, 오, 저희 모두의 주인이신 신이시여, 오, 삼계의 스승이신 신이시여, 제가 이 모든 걸 가졌다면 당신을 더 잘 섬길 방법이 있을 텐데요. 오, 그것으로 부족합니다. 신들의 신이시여, 당신을 섬기거나 당신께 경의를 표하고 당신을 노래하고 당신을 숭배하며 당신에 대해 명상하며 한 번이라도 당신 이야기를 듣거나 본 나 같은 사람을 해탈시키는 분이시여, 그 밖에 다른 해탈이 있을까요? 이것으로 해탈할 수 있다면 또 무엇을 바랄까요? 지치도록 해서 무얼 얻을 것이며 다른 불안한 신들을 따르면 무엇을 얻을까요?   모으고 보전하는 일에 바쁘시며 삶에서 모든 좋은 것을 주시고 유명한 자와 무명인 자의 위대한 스승, 내면과 외면으로 뻗어가시며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아시는 분, 모든 가능한 자비의 행위자, 제가 당신께 무슨 말을 드릴까요? 매일 생각합니다. 당신께선 제 마음에 아주 가까이 계시니 당신은 신의 행위자입니다. 오, 샴부 신이여, 오, 배우자와 함께하는 신이시여, 나는 헌신의 실에 묶인 귀의자입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맑은 마음의 항아리에 행복의 물을 채워 당신의 발치에 있는 망고 잎과 진정한 지식의 코코넛을 지키며 성스럽고 평화로운 다섯 글자 만트라를 부르고 내 영혼을 담은 이 육체를 정화하며 마음에 기쁨을 줄 좋은 것들을 찾아 이 정화의 의식을 행하고 있습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 무리는 베다의 바다를 헌신으로 휘젓고, 변치 않는 헌신의 밧줄과 세심한 마음의 막대기를 이용해 그곳에서 얻습니다. 배우자 우마와 함께하는 신께서는 소원을 이뤄주는 나무와 같고, 소원을 들어주는 카마데누 같으시며, 소원을 이루어주는 보석인 여의보주 같으시고, 총명한 사람에겐 행복의 변치 않는 감로수 같고, 레마의 모든 행운을 영원히 주시는 분입니다. 시바 신만이 유일한 제왕이니 존경받고 당당하시며 마음속 연꽃 성에 앉아 계십니다. 네발 달린 진리를 잘 지키며 죄악은 임종을 맞고 열정과 분노, 오만함이 사라지고 계절은 오직 선을 행합니다. 행복과 지식의 당당한 치유의 작물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지혜의 도구로 물을 주고 언어의 항아리를 써서 시의 운하와 물길을 통해 사다시바 이야기의 감로수를 가져옵니다. 심장의 들판에서 자란 헌신이 꽃피고 엄청난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그러니 신들의 신이시여, 우주의 신이시여, 당신 종이 어찌 기근을 두려워할까요? 죄의 비극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멸의 부를 맛보기 위해 죽음을 정복하신 신이시여, 나의 혀와 마음, 머리, 다리, 손, 눈, 귀가 내게 정중히 요청합니다. 당신을 찬양하고 당신에 대해 명상하고 위대한 당신 앞에 절하며 당신을 빙글빙글 돌며 정열적이고 분명하게 당신을 보고 당신의 찬가와 이야기를 들으라고 합니다. 그러니 내게 그리하라고 부디 명령해주소서.   또한 계속해서 그렇게 할 것을 일깨워주소서. 어떤 이유로든 제게 침묵하지 마소서. 오, 백조의 왕인 마음이여, 신께 바친 처녀와 함께 은밀히 살게 하소서. 기리자 신의 연꽃 발의 집에서 찬란한 감로수의 물결과 함께 반짝이고 빛나는 빨간 루비로 아름다운 붉은 색으로 백조 같은 고행자에 둘러싸여 당신처럼 평화롭게 살게 하소서. 샴부 신에 대한 명상의 봄에 마음의 정원에서 죄악의 마른 잎이 떨어지고 헌신의 묘목이 빛나니 선행의 새순이 모습을 드러내고 선한 성품의 꽃봉오리와 기도의 꽃과 선행의 거룩한 향기, 지식이 주는 기쁨, 그 암브로시아의 향연, 앎의 체험이 낳은 결실이 빛납니다』
지혜의 말씀
2020-06-02   111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6-02

자가트구루 아디 상카라차리야의 찬가: 시바난다 라하리, 2부 중 1부

00:12:53

자가트구루 아디 상카라차리야의 찬가: 시바난다 라하리, 2부 중 1부

『오 주여, 깨달은 뒤에도 진실은 지바(개인의 영혼)와 브라만(신)에 진정한 차이는 없습니다. 당신은 내게 속하지 않으나 나는 당신께 속합니다. 파도가 바다에 속하지만 바다는 파도가 아니듯이』 헌신적인 자가트구루 아디 샹카라차리야가 비슈누 신께 바친 이 기도는 신을 향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8세기 중인도에서 태어난 자가트구루 아디 샹카라차리야는 일찍부터 영적 삶에 관심을 보였죠. 8살 때 모든 베다 경전을 읽고 이해했습니다. 영적 깨달음을 얻기 위한 출가를 허락받은 후 그는 구루 고빈다 바가바트파다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샹카라차리야는 고대 가르침인 『아드바이타 베단타』와 『바가바드 기타』 그리고 10권의 주요 우파니샤드의 주석서를 집필했습니다. 그는 스마르타 전통의 창시자로 힌두교의 여러 학파를 통합하고 내면의 자아(아트만)와 최고 신(니르주나 브라만) 사이의 합일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샹카라차리야는 크리슈나신과 시바신께 헌정하는 72개 찬가를 지었습니다. 『천 가지 가르침』을 의미하는 『우파데샤 사하스리』도 저술했죠. 영적 수행과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인도 전역을 여행하며 현재도 여전히 활동하는 힌두교 수도원 네 곳을 설립했습니다. 32살에 자가트구루 샹카라는 비데하 무크티, 즉 육신에서 자유를 얻으며 지구에서 임무를 완수했다고 합니다.   『시바난다 라하리』 즉 『시바 지복의 파도』는 아디 샹카라가 저술한 종교 찬가 중 하나입니다. 『시바난다 라하리』가 여러분께 축복을 가져오길 바랍니다. 『제 경의를 바치도록 하소서. 예술에 헌신하는 이들에, 머릿속에 달을 지닌 이들에, 서로를 향한 속죄의 화신인 이들에, 참회의 결과를 신자에 가르치는 이들에게, 삼계에 선만을 허락하는 이들에게, 모든 기억이 점점 더 새로워지는 이들에게, 자신의 위대한 지식 덕분에 지극히 행복한 이들에게, 시바와 샤크티의 신비로운 결합의 결과에.   오, 우리에게 행복을 허락하는 샴부신이여, 시바신의 이 황홀경의 파도가 당신의 신성한 역사에서 흘러나와 영원히 죄의 먼지를 가라앉히고 지혜의 운하로부터 달려 나오며 생명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슬픔의 불을 끄고 내 심장 속 감각을 살며 언제나 승리하게 하소서. 온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세 개의 베다로 알려진 분, 마음에 편안한 분, 만물의 가장 으뜸인 분, 세 개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는 분, 헝클어진 자물쇠의 무게를 지는 분, 위대한 명성으로 움직이는 뱀을 목에 걸고 다니는 분, 뛰는 사슴을 자신의 손에 쥔 분, 천신 가운데 가장 위대한 분, 찬란하게 빛나는 분, 내게 자비를 베푸신 분, 모든 존재의 주인이신 분, 거룩한 지혜의 유일한 버팀목인 분, 나의 여신과 언제나 함께하시는 분, 즐거움을 주시는 위대한 분께.   수많은 신이 있어 기도하는 이에게 작은 선물을 준다네. 나는 꿈에서도 그들에게 기도하거나 선물을 요구하지 않는다네. 비슈누와 브라마와 다른 신들과 가깝지만, 그들은 가까이하기 어려운 시바신에게 나는 언제나 그의 연꽃 같은 발에 간청하며 애원하네. 나는 무지한 자 법의 학문에, 생명의 과학에, 의학기술에, 사건의 해석에, 시와 노래의 예술에, 정교한 문법의 어려운 책에, 옛날의 신성한 책에, 베다의 시편에,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노래함에, 무용의 기술에, 희극의 기술에 무지한 자, 그러니 내가 어찌 왕의 총애를 받을 수 있을까요?   오 모든 존재의 신이시여, 전지하신 분이여, 가장 유명한 분이여, 오, 편재하는 분이여, 나는 누구인가요? 나를 기쁘게 보호하시며 당신 자비의 바다를 아낌없이 내리소서. 이것은 항아리가 아닌 진흙일 뿐입니다. 이것은 흙이 아닌 원자일 뿐입니다. 이것은 연기가 아닌 불일 뿐입니다. 이것은 천이 아닌 실일 뿐입니다. 이 논쟁이 잔인한 죽음의 신을 고칠 수 있을까요? 이 쏟아지는 말들로 당신 목구멍에 헛되이 고통을 주니 대신에 샴부신의 연꽃 같은 발을 숭배합니다. 오 총명한 이여, 지극한 행복을 얻으소서.   당신의 연꽃 같은 두 발에 마음이 깃들게 하소서. 내 말이 당신 찬송에 머물게 하소서. 나의 두 손이 당신을 숭배하게 하소서. 나의 두 귀가 당신의 신성한 이야기를 듣게 하소서. 나의 마음이 당신에 대해 명상하며 나의 두 눈이 당신의 아름다움을 곱씹게 하소서. 이 모든 일을 하면 다른 모든 위대한 책은 아무 쓸모가 없나이다. 오, 최고 신이시여! 지적인 외침처럼 덮개는 은이고, 유리잔의 장식은 귀한 보석, 물은 밀가루와 섞어 우유, 물과 같은 신기루, 오 만물의 신이시여, 어리석은 자는 당신보다 다른 신을 숭배하고 당신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장 위대한 신은 누군가요.   인간의 형태이든, 신의 형태이든, 숲과 언덕을 배회하는 동물의 형태이든, 모기의 형태이든, 가축의 형태이든, 지렁이의 형태이든, 날아가는 새의 형태이든, 어떠한 형태이든 무엇이 되었든 그 역할에 정신이 깃들어있다면, 지고의 축복의 파도이신 연꽃 같은 당신 발에서 명상을 한다면, 어떤 몸을 가지고 있든 무슨 상관일까요? 독신의 구도자이든, 한 가족의 가장이든, 머리를 깎은 구도자이든, 숲 속에서 엉킨 머리칼의 재가자이든, 혹은 이들 중 누구도 아니더라도 만물의 신이시여, 만일 그의 연꽃 심장이 샴부신의 보호 아래 있다면 당신은 온전히 그의 것으로 그의 삶의 무거운 짐을 들어 올리도록 돕습니다.   동굴 속에 있든, 집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숲속에 있든, 산꼭대기에 있든, 물속에 있든, 불 가운데 있든, 제발 말씀해주세요. 어디에 사는 것이 무슨 상관인가요? 그의 내면이 항상 샴부신의 발밑에 쉰다면 그것은 수행이며, 그는 가장 위대한 요기, 영원히 행복할 겁니다. 참된 명상에 어울리지 않는 부질없는 이 세속의 삶에서 눈멀고 어리석은 나는 언제나 움직이니 나를 보호하는 당신이 옳을 뿐입니다. 만물의 신이시여, 나보다 당신 자비를 누리지 못한 자가 있나요? 이 삼계에서 내게 당신 외에 어떤 보호자가 있을까요? 가난한 사람들의 최고의 후원자이신 분.   가난한 이들과 가까운 유일한 신이시여, 만물의 신이시여, 나와 당신 관계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나는 가난한 자 가운데 가장 가난합니다.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 노고로 나를 보호하시니 관계된 이들 사이에 이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무소 부재하신 분이시여, 선행의 결과로, 혹은 당신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신 덕에, 오 신이시여,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나셨으나 당신의 거룩한 발을 내가 어찌 볼까요? 루비가 박힌 많은 천신의 왕관 때문에 나는 그 발을 보지 못합니다 누가 당신 발에 절하고 숭배하려 애씁니까?』
지혜의 말씀
2020-06-01   109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6-01

토마스 머튼 신부(채식인): 도교에 대한 단상, 2부 중 2부

00:13:10

토마스 머튼 신부(채식인): 도교에 대한 단상, 2부 중 2부

토머스 머튼 신부는 가톨릭의 중요한 신비가, 영적 사상가로서 뉴질랜드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1915년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 닥친 많은 삶의 환경이 종교와 영성을 탐구하도록 이끌었고 결국 수사가 되어 삶을 신에게 바쳤으며 후에 미국 켄터키주 트라피스트 수도회 겟세마네 수도원의 부제가 됩니다. 또한 수도원의 황야 지역 외딴집에서 홀로 지내길 즐겼습니다. 수도사로 생활 중에 토머스 머튼은 종교적 글을 번역하고 자서전을 집필하며 작문능력을 개발했습니다. 또한 영성, 사회의 정의와 평화에 대한 주제로 시와 책,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머튼의 가장 유명한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게 성자가 되는 것은 나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성과 구원의 문제는 사실상 내가 누구인지, 나의 참 자아를 발견하는 문제입니다』   또한 그가 말하기를 『우리는 아주 투명한 세상에 살고 있으며 신은 이것을 통해 항상 빛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멋진 얘기나 우화가 아닌 진실입니다』 모든 종교의 평등함을 믿는 토머스 머튼은 만년에 도교 같은 동양의 전통에 깊은 흥미를 보였습니다. 그는 또한 14대 달라이라마와 활발한 담화를 나눴습니다. 오늘은 켄터키주의 토머스 머튼 센터와 국제 토머스 머튼 협회와 다른 단체에서 이 현명한 신부의 삶과 활동들을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이제 토마스 머튼의 저서 『동양사상』에서 도교에 관한 내용을 계속 소개하겠습니다. 도교는 중국 철학으로 노자가 저술한 영적 고전 문헌인 도덕경에 실린 노자의 가르침에서 유래했습니다.   ♧도교에 관한 단상 이 세상에서 불행이라 여기는 것은 불편한 몸과 힘든 노동,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지 못하고 좋은 옷도 못 입고 볼거리도 없으며 즐거운 음악을 못 듣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허둥대면서 절망에 빠집니다. 너무 삶을 염려한 나머지 불안해하며 삶을 견딜 수 없게 만들고 원하는 것을 가질 때조차 불안해합니다. 바로 그 누리려는 마음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세상이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이 행복인지 아닌지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행복을 얻는 방식을 생각해 볼 때 내가 보는 것은 군중 대다수의 돌진 속에서 그들이 자신을 멈추거나 방향을 바꾸지 못한 채 경솔하고 냉혹하며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행복을 얻는 순간에 이르렀다고 주장합니다.   나로서는 행복이든 불행이든 그들의 기준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행복에 대한 그들 개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문합니다. 내 의견은 행복 찾기를 멈출 때까지 결코 행복을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가장 큰 행복은 행복을 얻기 위해 생각한 그 어떤 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부분 사람은 이것을 최악의 과정으로 생각합니다. 이 말을 고수하겠습니다. 「완벽한 기쁨은 기쁨이 없고 완전한 칭찬은 칭찬이 없는 것이다」 행복하기 위해 이 땅에서 도대체 「무얼 해야 하고 무얼 하지 말지」 묻는다면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은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결정할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멈추면 「옳고」 「그름」이 한번에 드러납니다.   대중의 희망에 기대어 행동하는 것을 멈추는 순간에 만족과 행복은 가능해지고 또 무위를 실천한다면 행복과 안녕을 모두 누릴 것입니다. 이렇게 요약합니다. 하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무위가 그 평온함이며, 땅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 무위가 그 휴식입니다. 하늘과 땅의 무위가 하나가 되면서 모든 행동이 나오고 만물이 생깁니다. 이 변화는 정말 거대하고 현묘합니다. 만물은 그냥 생깁니다. 그 광대함과 현묘함은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완전한 모든 존재는 무위에서 생깁니다. 그렇기에 말합니다. 「천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할 수 없는 것이 없다」 이런 무위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   ♧도는 어디에 있는가? 『동곽자가 장자에게 말했습니다. 「도가 어디 있는지 보여 주십시오」 장자가 대답했습니다. 「도는 어디에나 있다네」 동곽자가 주장했습니다. 「도가 있는 곳을 분명히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장자가「개미에게 있네」 「그리 하찮은 곳에요?」 「잡초에도 있네」 「그보다 더 하찮은 곳에도 도가 있습니까?」 「이 기와 조각에도 있네」 「어찌 더 하찮아집니까?」 이때 동곽자가 입을 다물자 장자가 말을 이었습니다. 「그대의 질문은 핵심을 잃고 있소. 왜 하찮은 것으로 내려가 도를 찾는가? 하찮은 것에는 도가 더 하찮을까? 도는 만물에서 위대하고, 만물에서 완전하고, 만물에서 보편적이며 온전한 전체라네. 이 세 가지 측면은 다른 것 같지만 실제는 하나이네.   그러니 나와 함께 많은 것들이 하나인 어디에도 없는 궁전으로 가세. 거기서 마침내 우리는 무한과 무극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거라네. 나와 함께 무위의 땅으로 가시게나. 그곳에서 우리는 도가 단순함, 고요함, 초연함, 순수함, 조화와 편안함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 모든 이름에 나는 무심한데, 그 이름들의 구별이 사라졌기 때문이네. 거기선 내 뜻에 목적이 없다네. 만약 어디에도 없다면 내가 어떻게 알아차릴까? 그 가고 옴을 알지 못하면 어디서 쉬겠는가? 도는 여기저기 떠돌지만 그것이 어디서 끝날지 모르네. 위대한 무에서 마음은 아직 알지 못하네. 여기서 고차원의 지식은 무한하네. 사물을 사물 그대로 보게 되면 사물의 경계가 없어지네. 그래서 경계에 대해 말할 때 경계가 있는 사물에만 국한하네. 경계 없는 경계를 「완전함」이라고 하고 경계의 무한성을 「공」이라 하네. 도가 이 둘의 근원이지. 그러나 그 자체로는 완전함도 공도 아니네. 도는 생과 소멸을 모두 만들어내지만 생과 소멸을 초월한다네. 도는 존재와 비존재의 원인이지만 존재도 비존재도 아니네. 도는 쌓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지만 전체나 무도 아니네」』  
지혜의 말씀
2020-05-30   148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30

토마스 머튼 신부(채식인): 도교에 대한 단상, 2부 중 1부

00:14:12

토마스 머튼 신부(채식인): 도교에 대한 단상, 2부 중 1부

토머스 머튼 신부는 가톨릭의 중요한 신비가, 영적 사상가로서 뉴질랜드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1915년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에 닥친 많은 삶의 환경들이 종교와 영성을 탐구하도록 이끌었고 결국 수사가 되어 삶을 신에게 바쳤으며, 후에 미국 켄터키주 트라피스트 수도회 겟세마네 수도원의 부제가 됩니다. 또한 수도원의 황야 지역 외딴집에서 홀로 지내길 즐겼습니다. 수도사로 생활 중에 토머스 머튼은 종교적 글을 번역하고 자서전을 집필하며 작문능력을 개발했습니다. 또한 영성, 사회의 정의와 평화에 대한 주제로 시와 책, 기사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머튼의 가장 유명한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게 성자가 되는 것은 나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성과 구원의 문제는 사실상 내가 누구인지, 나의 참 자아를 발견하는 문제입니다』   또한 그가 말하기를 『우리는 아주 투명한 세상에 살고 있으며 신은 이것을 통해 항상 빛나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멋진 얘기나 우화가 아닌 진실입니다』 모든 종교의 평등함을 믿는 토머스 머튼은 만년에 도교 같은 동양의 전통에 깊은 흥미를 보였습니다. 그는 또한 14대 달라이라마와 활발한 담화를 나눴습니다. 오늘은 켄터키주의 토머스 머튼 센터와 국제 토머스 머튼 협회와 다른 단체에서 이 현명한 신부의 삶과 활동들을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오늘은 토머스 머튼의 저서 『동양의 사상』에서 도교의 정수에 관한 그의 관점을 소개하겠습니다. 도교는 중국 철학으로 노자가 저술한 영적인 고전 문헌인 도덕경에 실린 노자의 가르침에서 유래했습니다.   ♧도교에 대한 단상 도의 길은 바로 그 존재 자체에 부여된 단순한 선과 함께 시작됩니다. 이 선을 자의적으로 수양하는 대신에 (이 선은 보려고 하면 사라지고 잡으려고 하면 만질 수 없습니다) 단순하고 평범한 삶을 겸손하게 살면서 조용히 성장하는 것으로 이 길은 기독교의 「신앙생활」과 (적어도 심리적으로) 유사합니다. 이는 선을 노력의 대가로 보는 것보다 선을 믿는 것에 더 가깝지요. 그러므로 장자가 제시한 도의 비결은 공자가 가르친 선행과 공덕을 쌓는 것이 아니라 무위, 즉 하지 않음 또는 행위가 없는 것입니다. 이는 결과에 주의하지 않으며 의식적으로 계획하거나 애써 계획하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가장 큰 행복은 바로 행복을 얻기 위해 계획한 일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완벽한 기쁨은 기쁨을 의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행복하기 위해 도대체 「무얼 해야 하고 무얼 하지 말지」 묻는다면 나는 이 질문에는 모든 상황에 맞는(고정되고 정해진) 답이 없다고 대답합니다. 만일 도, 우주의 도, 「대도」와 조화를 이루면 행동해야 할 때 그 답은 스스로 분명해지고 인간의 자의적으로 계획된 방식을 따르지 않고 초월적이고 자연스러운 무위의 방식에 따라 행동하게 됩니다. 이것이 도의 근본적인 행동 방식이고 모든 선의 근원입니다. 무위의 진정한 특성은 한낱 행동하지 않음이 아니라 완벽한 행동입니다. 그것은 행함이 없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천지와 무관하게 하는 행동이나 전체의 흐름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행동입니다.   이것은 단지 수동적이 아니라 애쓰지 않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며 우리 본성에 완벽하게 일치하는 바른 행동으로 사물의 계획에서 제자리를 찾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강요도 없고 폭력도 없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자신의 개인적 필요나 욕구, 혹은 자신의 이론이나 관념이 전제되거나 구애받지 않습니다. 장자 사상의 핵심은 상반되는 것을 보완하는 것으로 이것은 긍정과 부정, 나와 남을 분명히 넘어서 도의 중심을 움켜잡을 때만 볼 수 있습니다. 인생은 발전의 연속이며, 모든 존재는 항상 변합니다. 오늘 불가능한 것이 내일 갑자기 가능해집니다. 오늘은 좋고 즐거운 것이 내일은 악하고 불쾌해집니다.   한 관점에서 옳게 보이던 것이 다른 면에서 볼 때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저 무관심하게 옳고 그름, 그리고 선과 악을 모두 같은 것처럼 대해야 할까요? 장자는 그들이 같음을 처음 부정한 사람일 겁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므로 한쪽을 잡거나 절대적으로 매달릴 것을 거부합니다. 제한적이고 조건적인 「선」의 관점이 절대적인 단계에 오르면 그 관점은 즉시 악이 됩니다. 왜냐하면 완전한 선이 되는데 필요한 어떤 보완적인 요소를 배제하기 때문입니다. 부분적인 관점과 제한적이고 조건적인 견해에 집착하는 것과 그것을 모든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답으로 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도를 가리고」 오류를 고집하는 것입니다.   도의 중심을 잡은 사람은 「긍정」과 「부정」이 서로 돌면서 위치를 바꾸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안목도 있고 판단도 명료해서 그것에 반대하는 「부정」의 관점에서 「긍정」이 「긍정」임을 알게 됩니다. 행복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재앙이 된다는 걸 압니다. 아름다움이 과하면 추함이 됩니다. 구름은 비가 되어 내리고 수증기로 다시 올라가 구름이 됩니다. 구름이 비가 되면 안 된다고 우기는 것은 도의 흐름을 막는 것입니다.   ♧완벽한 기쁨 『세상에 완전한 기쁨은 있을까요? 아니면 그런 것은 없을까요? 삶을 정말 가치 있게 만드는 길은 있을까요? 아니면 불가능할까요? 만일 그런 길이 있다면 어떻게 그걸 찾을까요? 무엇을 시도해야 할까요? 무엇을 피해야 할까요? 무엇을 목표를 잡아야 행동을 멈출 수 있을까요? 무엇을 받아들일까요? 받아들이려면 무엇을 거부해야 할까요? 무엇을 사랑해야 할까요? 무엇을 싫어해야 할까요? 세상이 소중히 하는 것은 돈과 명성과 장수와 업적입니다. 기쁨으로 여기는 것은 건강과 육신의 안락함, 맛있는 음식과 좋은 옷, 보기 좋은 것과 듣기 좋은 음악입니다. 세상이 비난하는 것은 돈의 부족과 낮은 사회적 지위, 나쁜 평판과 때 이른 죽음입니다. 불행이라 여기는 것은 불편한 몸과 힘든 노동,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지 못하고 좋은 옷도 못 입고 볼거리도 없으며 즐거운 음악을 못 듣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허둥대면서 절망에 빠집니다. 너무 삶을 염려한 나머지 불안해하며 삶을 견딜 수 없게 만들고 원하는 것을 가질 때조차 불안해합니다. 바로 그 향유하려는 마음이 그들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지혜의 말씀
2020-05-29   205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29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채식인): 신국론 - 진정한 중재자 9권과 10권 발췌, 2부 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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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채식인): 신국론 - 진정한 중재자 9권과 10권 발췌, 2부 중 2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4세기 말과 5세기 초에 현재의 알제리인 히포에서 존경받는 기독교 주교였습니다. 그는 40대 초에 고대 항구도시 히포의 주교가 되었고 여생 동안 주교직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가장 위대한 기독교 철학자 중 한 분이며 아직도 보존된 백 권의 책과 3백 개의 서신, 5백 개 강론을 집필한 다작의 작가였지요. 신학, 철학, 사회학 등의 주제를 다룬 그의 작품은 기독교계에 지속해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신국론』 『그리스도교 교양』 『고백론』이 있습니다. 존경받은 이 주교는 또한 자비로운 채식인이었고 『고기와 술뿐 아니라 너무 맛있는 다른 진수성찬도 먹지 않는』 이들의 삶의 방식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성 바울의 말을 인용했지요. 『고기를 먹거나 술을 마시지 않으며 형제자매를 타락시키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중요한 저서 『신국론』을 계속 읽어드립니다. 그는 신에게 헌신하는 것과 자신의 희생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정화하고 새롭게 하는 진정한 중재자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10권 6장: 참되고 완전한 제사에 대하여 『참된 제사는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되기 위해 행하며 그 안에서 복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선 및 궁극의 목적과 관계되는 모든 일이다.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 자비를 보여주더라도 하나님을 위해 드러낸 것이 아니면 제사가 아닌 것이다. 비록 인간이 행하거나 바치더라도 그 의미하는 바를 제사로 부르는 자에게 제사는 신성한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성되고 하나님께 바친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요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이니 그 사람이 곧 제물이다. 이것은 인간 각자가 자신에 보여주는 자비의 한 부분이다. 성경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기쁘게 하여 너희 영혼에 자비를 베풀라. 절제를 통해 육신을 다스릴 때 우리 몸도 또한 제물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우리 의무를 행한다면 우리 일원을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넘겨주지 않고 의로움의 도구로 하나님께 바친다. 사도는 이런 제물을 권면하며 말씀하길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영적 예배니라」 그렇다면 영혼은 육신을 더 낮은 종복이나 도구로써 육신을 올바르고 하나님과 관련한 제물로 이용하게 된다. 그런데 영혼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때 얼마나 큰 제물이 되겠느냐? 그렇게 되려면 주님의 사랑의 불로 태워지고 주님의 아름다움을 받아들여 그분을 기쁘게 하며, 세속적 욕망의 형체를 잃고 변치 않는 사랑스러운 형상으로 바꿔져야 하지 않겠는가?   참으로 사도께서는 덧붙여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처럼 참된 제사는 자신과 다른 이들, 그리고 하나님께 바치는 자비의 행위이다. 자비의 행위에는 곤경에서 건지며 행복을 주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다. 그런 선을 제외하곤 다른 행복이 없기에 성경말씀에 따르면 「우리 행복은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온전히 구원된 도성, 거룩한 공동체를 하느님께 바치라는 성경말씀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치신 대제사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종복이냐에 따라 이 영광스런 머리의 일원이 될 수 있다.   그분 제사는 이렇게 이 안에서 자신을 바쳤다. 이에 따라 주님이 중재자이고 이런 제사에서 주님이 우리 제사장이다. 따라서 사도께서 우리에게 우리 몸을 산 제물로 거룩하고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로 바치라고 권하실 때 이 세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에서 우리의 참 제사에 대해 그는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총으로 모든 이에게 내가 말하나니 너희 가운데서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생각해야 할 것보다 더 높게 생각하되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믿음의 척도로 대하듯이 진지하게 생각하라. 우리에게 하나의 몸에 많은 부분이 있듯이 모든 부분이 같은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구세주의 은혜에서 믿음의 분량대로 각각의 직분에서 한 몸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참된 제사이다.   ♧24장: 오직 하나의 진리의 성육신이 인간 본성을 정화하고 새롭게 한다. 인간은 오직 성육신으로 정화된다고 한다. 그 참되고 선하신 구세주는 겸손으로 낮아지시고 죽음의 운명을 취하시어 인간이 되시지만 악하고 기만하는 중재자는 불멸의 은혜와 사악한 인간에게 기만의 도움을 원하고 약속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선하고 참되신 중재자께서는 죄가 악한 것이지 육신의 실체나 본성이 악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셨다. 그 분은 죄가 없이도 육신을 인간의 영혼과 함께 취할 수 있고, 지닐 수 있고, 죽음으로 이를 벗을 수 있고, 부활로 더 나은 것으로 바꿀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또한 죽음 자체가 죄에 대한 벌이더라도 우리를 위한 중재자에 의해 죄 사함을 받게 되고 우리의 죄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로움을 위해 그 기회를 섬기고 견디셨다.   그분은 비록 죽으셨으나 당신 죄 때문에 죽지 않으니 당신의 죽음을 통해 우리를 죄에서 구할 수 있었다. 그 성육신은 그리스도 안의 육신도 인간의 영혼도 아니고 모든 것을 만든 말씀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은 육신의 덕으로 정화되지 않고 말씀의 덕으로 정화된다. 이를 이르되 「말씀이 육신이 되고 우리 안에 거하신다」 내 살을 먹는다는 (요한복음 6: 53 - 55) 신비스런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은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는가?」라며 받아들이지 못하고 떠나갔다. 주님은 남아있는 이들에게 답하셨다. 「살리는 것은 영이요 육신은 무익하니라」 그러므로 성육신, 즉 사람의 영혼과 육신이 믿는 자의 영혼과 육신을 정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이신지 물었을 때 예수님은 성육신이라고 답하셨다. 육욕을 가지고 약하여 죄를 범하기 쉽고 무지의 어둠에 둘러싸인 우리 인간은 우리와 같으시되 우리와 다르신 주님에 의해 정화되고 치유되지 않는다면 이걸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인간이지만 의롭지 못했다. 한편 그분의 성육신은 인간성을 가졌지만 의롭고 죄가 없었다. 믿음을 잃고 타락한 이들에게 뻗어진 손길이 바로 이 중재자이다. 그분은 바로 천사들을 통해 전해진 씨인데, 천사들의 반포로 율법이 주어졌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이 중재자가 올 것이 약속되었다.  
지혜의 말씀
2020-05-28   136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28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채식인): 신국론 - 진정한 중재자 9권과 10권 발췌, 2부 중 1부

00:12:07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채식인): 신국론 - 진정한 중재자 9권과 10권 발췌, 2부 중 1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4세기 말과 5세기 초에 현재의 알제리인 히포에서 존경받는 기독교 주교였습니다. 그는 40대 초에 고대 항구도시 히포의 주교가 되었고 여생 동안 주교직을 계속했습니다. 그는 가장 위대한 기독교 철학자 중 한 분이며 아직도 보존된 백 권의 책과 3백 개의 서신, 5백 개 강론을 집필한 다작의 작가였지요. 신학, 철학, 사회학 등의 주제를 다룬 그의 작품은 기독교계에 지속해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신국론』 『그리스도교 교양』 『고백론』이 있습니다. 존경받은 이 주교는 또한 자비로운 채식인이었고 『고기와 술뿐 아니라 너무 맛있는 다른 진수성찬도 먹지 않는』 이들의 삶의 방식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성 바울의 말을 인용했지요. 『고기를 먹거나 술을 마시지 않으며 형제자매를 타락시키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오늘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 『신국론』을 발췌해서 읽겠습니다. 여기서 성자는 땅에서 악마가 어떻게 인간에게 복된 불멸의 삶을 향하지 못하게 방해하며, 중재자이신 그리스도만이 인간을 변함없이 고양하며 영원한 행복을 얻는 유일한 길인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9권 14장: 인간은 죽어야 할 존재이지만 참된 복락을 누릴 수 있는가? 인간이 죽을 운명이면서 복된 존재가 될 수 있는지는 인간에게 중요한 질문이다. 자신의 상황을 보다 겸허히 보는 이는 죽어야 하는 삶을 사는 동안 복된 존재가 될 수 없다고 하지만, 다른 이는 이와 달리 인간은 죽을 운명이지만 지혜를 얻으면 복된 존재가 될 수 있다며 대담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지혜로운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야 할 인간과 복된 불멸의 존재의 중재자가 되지 않는가? 그들은 후자와 같은 복된 존재이면서 전자와 같은 죽어야 할 운명을 가졌는데 말이다. 그들이 복된 존재라면 분명히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겠지만(부러움보다 더 비참한 것은 없으니까) 비참하고 죽을 이들을 복된 존재가 되도록 도와 사후에 그들이 불멸이 되어 복된 존재와 불멸의 천사들과 함께 교류하도록 온 힘을 다해 돕는다.   ♧15장: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과 사람의 중재자 그러나 모든 이가 죽을 운명이며, 비참한 것이 훨씬 더 개연성 있고 믿을 만하다면 우린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신 중재자를 찾아야만 한다. 그는 복된 죽을 존재라는 중간적 입장으로 인간을 죽음의 비참함에서 빼내어 복된 불멸로 데려갈 것이다. 이 중재에는 두 가지가 요구되는데, 그는 죽어야 할 존재가 되지만 죽을 존재로 계속 있어서는 안 된다. 죽어야 할 존재가 되었지만 이는 말씀의 신성이 약해진 것이 아니라 육신의 연약함만 취한 것이다. 그는 계속해서 육신의 죽을 운명에 있지 않고 죽은 몸에서 살아난다. 이것이 그의 중재의 산물이며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중재자가 되었기에 그가 영원히 육신의 죽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는 우리와 하나님의 중재자 되었기에 일시적인 죽음과 영원한 복락을 모두 가진다.   일시적인 죽음을 통해 그는 죽어야 할 인간을 이해할 수 있고, 인간을 죽어야 할 존재에서 영원한 존재로 바꾸게 된다. 따라서 선한 천사들은 죽어야 할 비참한 인간과 복된 불멸의 존재를 중재할 수 없다. 그들은 복된 존재이며 불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악한 천사는 중재할 수 있는데, 천사처럼 불멸이면서 인간처럼 비참하기 때문이다. 불멸이면서 비참한 악한 천사들과 반대로 선한 중재자는 일시적으로 죽음의 운명을 선택했지만 영원히 복된 존재로 계속 머물 수 있다. 따라서 자기 죽음이란 겸손과 복된 존재라는 은혜를 통해 교만하고 해를 끼치는 악마들을 파괴하고 악마들이 자신의 불멸성을 과시하여 비참함의 길로 유혹하는 걸 막고 믿음으로 마음을 정화한 사람들을 악마의 불순한 지배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렇다면 죽을 운명이자 비참하여 불멸과 복된 존재에서 아주 멀어진 인간이 다시 불멸과 행복을 얻기 위해 어떤 중재자를 선택해야 하는가? 인간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악마의 불멸은 비참하다. 인간을 불편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불멸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전자는 영원한 불행이란 두려움이 존재한다. 후자는 영원할 수 없는 죽음을 더는 두려워하지 않으며 영원한 복락을 사랑해야만 한다. 불멸의 비참한 중재자인 악마는 우리가 복된 불멸로 가지 못하게 막는다. 왜냐하면 그에게 그런 길을 방해하는 비참함이 계속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을 운명이자 복된 중재자는 직접 끼어들어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통해 넘어가서 사람들이 불멸이 되게 하고(자신의 부활에서 이것을 이룰 힘을 보여주심) 중재자 자신이 절대 떠나지 않았던 일원들을 비참함에서 복된 존재와 함께 하도록 올려준다. 친구들을 갈라놓는 사악한 중재자가 있는 반면 적들을 화해시키는 선한 중재자가 있다. 갈라선 이들은 많다. 왜냐하면 축복받은 다수의 복된 자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의 편에 섰기에 축복을 받으나 악한 천사의 편에 서면 결핍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악하며 이런 지복으로 가는 걸 돕기보다는 차라리 방해하여 우리가 행복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지복을 얻으려면 많은 중재자가 아니라 하나의 중재자가 필요하다.   그분은 창조되지 않았으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분의 편에 서면 축복을 받는다. 난 그분을 중재자라 말하지 않는데 그분은 말씀이고, 말씀으로 그분은 지고의 축복을 받았으며 지극하신 불멸의 존재로 비참한 죽을 운명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지만 인간이시며 중재자이시다. 그분의 인간성을 통해 복된 존재와 지복을 얻기 위한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 이것을 얻기 위한 연속적인 단계로 우리를 이끄는 다른 중재자를 찾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복된 존재이신 지복의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편이 되어 우리가 그분 신성의 편에 서기 위해 들어갈 준비를 하도록 만든다. 죽을 운명과 비참함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주님이 축복받은 불멸의 천사에게 우리를 인도하지 않기에 그들의 본성에 합류하여 불멸의 복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를 천사들의 축복에 합류시키므로 곧바로 삼위일체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주님은 천사보다 낮은 종의 형체를 취하시어 우리의 중재자가 되시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천사보다 더 높은 곳에 계시니 땅에서는 생명의 길이요 하늘에서는 생명 그 자체이시다.   17장: 최고 선에 참여함으로써 복된 생명에 이르기 위해 인간은 악마와 같은 중재자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와 같은 중재자만을 필요로 한다. 여기 아래에서 육신의 죽을 운명으로 우리와 하나가 되고, 동시에 주님 성령의 불멸의 의로움으로 우리를 씻어주시고 자유롭게 해주시며 하늘에 머물면서 여기 땅에도 있으시고 참된 신성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중재자가 필요하다. 불결해지실 수 없는 하나님이신 관계로 인간의 형상을 취하고 인간 사이에 있어도 불결해질까를 염려하실 필요가 없다. 주님의 성육신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두 가지 유익한 가르침은 육신으로 말미암아 참된 신성이 불결해지지 않음과 악마에겐 육신이 없더라도 우리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믿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주님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과 사람의 중재자』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며 그 신성은 아버지와 항상 동등하시며, 그분의 인성은 우리와 비슷하게 되셨다.
지혜의 말씀
2020-05-27   111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27

마야인의 세계관: <운명의 서: 고대 마야인과 2012년에 대한 예언의 비밀을 밝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비건), 2부 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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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인의 세계관: <운명의 서: 고대 마야인과 2012년에 대한 예언의 비밀을 밝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비건), 2부 중 2부

오늘은 계속해서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의 저서 『운명의 서: 고대 마야인과 2012년에 대한 예언의 비밀을 밝히다』를 읽겠습니다. 마야인이 믿는 『평행 세계』와 『나흐트』(시공간)의 진정한 의미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고대 마야 문명은 당시에 가장 기술적으로 발달한 문명의 하나로 알려졌으며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 남부에서 수천 년 전에 기원했지요. 마야인은 가령 상형문자 체계, 수학과 조각, 의학 같은 많은 분야에서 높은 발달을 성취했습니다. 그들 도시는 웅장한 석조 구조가 특징이며 우주 정렬의 원칙에 따라 설계되었고 건축물은 흔히 마야의 영적 신들에게 바쳤습니다.   고대 마야인의 지혜는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자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마야인의 이야기는 그들 조상을 엿보는 창구이기도 합니다. 『운명의 서: 고대 마야인과 2012년에 대한 예언의 신비를 밝히다』에서 작가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는 존경하는 마야의 영적 지도자들로부터 전수한 마야의 전통을 설명합니다. 이 책은 마야인의 삶과 영성의 또 다른 면을 다루고 있으며 마야인의 세계관, 촐키즈 달력과 마야인의 예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인류 영성 보존의 코디네이터이며 유네스코 중앙아메리카 물 프로젝트의 코디네이터입니다.   두 명의 마야인 영적 안내자 돈 파스쿠알과 돈 이시드로와 함께 한 헌신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그는 마야인의 영성과 가르침을 전하는 임무를 위임받았습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는 대학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야의 고대 지혜와 접하자 자신이 진정한 근원에 대한 지식 없이 산만하고 혼란에 빠져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영적 안내자인 돈 파스쿠알로부터 다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의 중심이 내면으로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돈 파스쿠알이 말했지요. 「어릴 때 한 장로를 만났다. 어떤 이는 그를 노인 중 최고령자라 불렀고 다른 이는 그를 말수가 적은 사람으로 묘사했다. 나는 그의 신뢰를 얻었기에 그가 진실을 말해 주었다. 그는 우주와 창조주가 원해서 만든 이 세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창조주는 조물주를 만났고, 그들은 그들 의지가 구체화한 현실을 만들었다. 그래서 나흐트, 즉 시공간이라는 마법이 생겼다. 예정된 장소에 현실은 존재하며, 이는 형상을 만드는 능력과 에너지 또는 비현실성을 표현하는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우리는 타고난 순수함을 잃고 나서 이것을 배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 삶은 이 무의식에 사로잡히게 되며, 그때 우리는 나약해진다. 이 인류는 허영심을 가졌고 창조주를 잊은 까닭에 위대한 아버지에게 벌을 받은 후 길을 잃게 되자 그는 우리의 시조인 발라메브, 발람 키체, 발람 아카브, 마후쿠타흐와 아키 발람을 보냈다. 이들은 위대한 현자이자 선각자였으며 놀라운 마법사였다. 그들 고향이 우리의 고향이며, 그들 전통은 우리의 전통이며, 그 유산이 우리의 삶의 방식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모든 예술을 가르쳤고 지식을 전했는데 우리 최초의 선조가 온 곳에서 현실이 생겼기 때문이다」    돈 파스쿠알이 말했습니다. 「이 얘기로 내 인생을 바뀌고 나는 갑자기 우리가 가진 공통의 기원을 이해했다. 우리 선조의 신성이 위대한 영, 태양들의 태양에서 받은 존엄성이며 그 지식은 별들과 지구 양쪽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내 여정의 시작이고, 이 이야기가 우리 선대의 전통으로 돌아가려는 제 소망을 일깨웠다」』 여러분은 마야인에게 나흐트(시공간)가 정확히 어떤 뜻이지 궁금할 겁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 『서양의 더욱더 직선적인 시각과 달리 마야인의 시간 인식은 공간과 진동수와 얽혀있습니다. 서양에서 시간은 일정과 안건이라는 형태의 한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시간은 돈이다」라는 표현으로 완벽히 요약됩니다. 공간은 소유의 형태로 물질적이고 영토의 모습을 보입니다. 이런 분리 때문에 갈등과 혼란이 빚어지게 되었습니다. 특히 구전된 마야 선조의 이야기에 의하면 만물은 거대한 소용돌이 안에 존재하며 이는 플레이아데스(별자리) 바로 옆에서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 하나의 소용돌이에 우리가 테오스, 즉 우주라고 부르는 물질적 형태를 가진 만물이 담겼습니다. 본질이 없는 모든 것은 이 소용돌이 밖에 존재합니다. 이런 해석 안에서 마야인은 나흐트를 진동수를 더한 시공간으로 정의합니다.   이 세 요소는 우리가 현실로 아는 것과 이 현실 안에 존재하는 물질을 설명합니다. 존재하는 만물은 에너지이고 모든 것은 주파수 또는 진동을 가졌지요. 이 때문에 모든 생명이 차별화됩니다. 가령 사람의 에너지 즉 진동은 돌보다 더 빠르지만 둘 다 에너지로 이루어집니다. 둘의 차이는 진동에 있습니다』 세상의 많은 중요한 영적 전통에서, 성인들은 내면의 천상의 『빛과 소리』에 대한 명상을 깨달음의 방편으로 가르쳐 왔습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는 수천 년 전에 이 행성에 거주했던 사람들도 똑같은 방법을 수행했다고 설명합니다.   『「(내면의 천상의) 빛을 따르라」라고 들었습니다. 어둠이 부정적인 것처럼요. 그러나 마야의 현자들이 빛을 따르라고 하는 것은 뒤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앞서가라는 의미입니다. 앞서가서 빛의 속도를 넘어서라는 의미입니다. 빛과 어둠은 단지 현실의 한 단면입니다. 일단 이것을 이루면 현실과의 관계는 더는 직선이 아닙니다. 우리가 빛을 조종할 수 있다면 내면의 영과 의식의 제약을 산산이 부수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새 길을 개척하고, 모든 것이 뚜렷해집니다. 이때 우리는 존재감을 갖게 됩니다. 우리는 더는 악마와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는 시공간의 한계 밖에 있습니다. 진동이 초월과 그런 한계를 넘는 수단이 됩니다.   우리가 본질을 인식할 수 있을 때 신과 접촉합니다. 무한한 공간에는 행성 간에 가시적인 빛이 없습니다. 보이는 모든 것은 태양을 반사하고, 태양의 중요성을 드러낼 뿐입니다. 모든 것은 아흐푸 즉 태양에 기인하며, 만물은 은하의 중심 즉 블랙홀과 관련됩니다. 우리는 사실 거대 소용돌이의 회전 속에 돌고 있습니다. 거대 소용돌이의 경계는 서로 접촉하며, 그때 우주에서 조정이 일어납니다. 마야인은 시공간을 여행하기 위해 이 경계를 돌파하는데 사로잡혀 있습니다. 우리는 나흐트에 살며 대부분 사람이 그걸 이해하죠. 더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 사람이 갇힌 곳을 현실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를 둘 다 관념적인 과거나 미래라는 것으로 이끕니다. 과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존재했었지만 지금은 기억일 뿐입니다. 미래 역시 존재하지 않으며 그렇게 될 것입니다. 단지 이 순간, 바로 이 순간, 영원한 현재만 존재합니다』   마야인의 세계관은 영적인 관점이며 세속의 삶과 참된 내적인 의미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는 계속해서 우리의 평범한 삶의 통찰 너머의 이런 내적 차원들에 대해 설명합니다. 『우주에서 폭발은 각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폭발에 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정신적으로 폭발해야 합니다. 이는 다음의 질문을 낳습니다. 그러면 다른 차원이나 현실이 존재하나요? 대답은 『그렇다 』입니다. 시간, 공간, 진동이 다르게 측정되거나 배열되기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차원들이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인식 밖에 떨어져 있다 해도 수천의 다른 차원으로 접근이 가능합니다. 선조들은 이런 비현실적인 차원을 「구성되지 않은 우주」라고 부릅니다. 「포폴 부흐」는 낙원을 평행 차원으로 이야기하며 팍실과 카얄라로 부릅니다. 팍실에서 우리의 인식은 다릅니다. 우리 감각은 예민해지고, 평온하며 조화롭고 평화로운 에너지로 둘러싸입니다. 이것은 매트릭스, 즉 근원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나흐트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팍실에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이 우리 세상에선 일 년이고, 카얄라에서 일 년 동안 일어난 일은 여기서 하루가 걸립니다. 따라서 다른 차원에서는 공간, 시간 및 진동의 기준이 다릅니다. 빛은 이런 평행 차원에서 다르게 작용합니다. 거기엔 태양이 없습니다. 빛은 더 밝지만 더 뜨겁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맑고, 만물을 아우르는 빛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과일과 가장 놀라운 돌이 팍실에서 발견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우리가 조건 없이 받아들여지고 진정으로 사랑받는 겁니다』
지혜의 말씀
2020-05-26   162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26

마야인의 세계관: <운명의 서: 고대 마야인과 2012년에 대한 예언의 비밀을 밝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비건), 2부 중 1부

00:14:53

마야인의 세계관: <운명의 서: 고대 마야인과 2012년에 대한 예언의 비밀을 밝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비건), 2부 중 1부

오늘 방송에서 마야인의 세계관과 삶의 목적에 대한 생각을 소개하겠습니다. 이 주제들은 마야인 아흐키즈(영적 안내자)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의 저서 『운명의 서: 고대 마야인과 2012년에 대한 예언의 비밀을 밝히다 』에서 논의되었습니다. 고대 마야 문명은 당시에 가장 기술적으로 발달한 문명의 하나로 알려졌으며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 남부에서 수천 년 전에 기원했지요. 마야인은 가령 상형문자, 서체 체계, 수학과 조각, 의학 같은 많은 분야에서 높은 발달을 성취했습니다. 그들 도시는 웅장한 석조 구조가 특징이며 우주 정렬의 원칙에 따라 설계되었으며 종종 마야의 영적 신들에게 헌정되었습니다.   고대 마야인의 지혜는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자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마야인의 이야기는 그들 조상을 엿보는 창구이기도 합니다. 『운명의 서: 고대 마야인과 2012년에 대한 예언의 신비를 밝히다』에서 작가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는 존경하는 마야의 영적 지도자들로부터 그가 전수받은 마야의 전통을 설명합니다. 이 책은 마야인의 삶과 영성의 또 다른 면을 다루고 있으며 마야인의 세계관, 촐키즈 달력과 마야인의 예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는 중앙아메리카에서 인류 영성 보존의 코디네이터이며 유네스코 중앙아메리카 물 프로젝트의 코디네이터입니다.   두 명의 마야인 영적 안내자 돈 파스쿠알과 돈 이시드로와 함께 한 헌신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그는 마야인의 영성과 가르침을 공유하는 임무를 위임받았습니다. 마야인은 상형문자, 조각, 건축물, 책, 구전 등을 통해 그들의 신성한 기억을 보존했습니다. 마야의 전설에 따르면 네 명의 위대한 스승이 이 인류 순환의 시초에 임명되어 인도, 이집트, 그리스와 아메리카 대륙에 인도와 가르침을 펼쳤다고 합니다. 이 네 명의 스승 중 하나가 나가 마야였습니다.   『나가 마야는 인도로 갔지요. (산스크리트어로 「나가」는 인도 문화의 중요한 상징인 「뱀」을 의미합니다) 비베파리타 카라니로 알려진 고대 베다 찬가집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유목민으로 인도 계곡을 떠돌아다녔을 때 나가 마야인이 바다를 건너 비마나라 불리는 천상의 화차를 타고 하늘을 날아왔네. 그들은 우리에게 농업과 사회조직, 건설(건축술)뿐 아니라 또한 수학과 하늘의 신비(천문학)를 가르쳐 주었노라. 그들은 아홉 단(계단 피라미드)으로 집을 지어 태양을 숭배했고 우리에게 시간의 척도를 남겨주었네. 자신들의 일이 끝나자 비마나를 타고 떠났네」』   고대 전통의 지혜는 가장 신실한 사람들이 이야기, 의식 및 다른 관습을 통해 살아남게 했으며 언제나 모든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강력하게 닿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더욱더 내면을 계발하고 모든 존재를 연결하는 공통의 실마리를 찾도록 격려하여 인간과 자연 간에 조화를 이루게 돕지요. 『세상에 창조의 의미가 온전하게 남아있는 한 곳이 있습니다. 존재의 장엄함, 존재의 본질과 인식 및 우리 삶의 목적에 대한 앎이 이 안전한 피난처의 뿌리입니다. 소외와 목적 없음은 없으며, 우리는 여전히 무한한 우주를 넘어온 에너지와 어머니 지구의 심장의 영원한 불에서 온 것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만물을 존경하도록 가르치며 우리 선조는 지상의 어떤 것도 우리 것이 아님을 아셨습니다. 만물은 위대한 아버지와 위대한 어머니가 심어 놓으셨고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입니다. 위대한 현자였던 우리 조상은 수천 년 전에 성스러운 불을 밝혔고 그것은 꺼진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빛이며 우리 영의 온기입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늘의 심장과 연결하는 불꽃입니다. 이 현자들은 우주 과학을 물려받았으며 우리를 인생의 길, 창조의 소용돌이, 나흐트, 즉 시공간의 주기로 인도했고 그곳은 실상이 화현하는 곳입니다. 이 지식은 그들이 최초의 선조에게 받은 유산입니다. 이 삶의 인식, 현실 및 우주와 연결이 그들을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안내자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들의 세계관, 즉 시공간에 관한 견해는 자연과 조화로운 공존의 철학에 바탕을 두는데, 이는 창조 이면의 진실이며 인간 존재에 관한 진실입니다. 그것은 자연과 조화롭게 살고 우리 자신을 시작으로 모든 생명체를 존중하라고 가르칩니다』 마야의 모국어 전통주의자이며 사상가인 라몬 카르발라에 따르면 『현실은 우리를 주변에 대한 시각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훨씬 미묘한 현실들이 있습니다. 인간은 진화하면서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잃었고, 따라서 우주와 단절되어 물질적인 것만을 채우는 방치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이 그들을 자멸하게 만들 것이며 자연의 섭리로의 회귀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입니다』   마야인의 시각에서 현실은 우리를 둘러싼 물질세계가 아니라 주의를 내면으로 돌릴 때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 단계에서 과학은 우리가 포괄적 인식에 도달하지 않는 한 우리를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의 섭리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생태 의식을 갖고 조화롭고 단순한 삶을 살려고 해야 합니다. 창조의 경이는 작은 것에서 발견됩니다. 우리는 조화롭게 살며 감각을 확장해야 합니다. 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인생은 내면에서 답을 찾고, 그 안에 있는 지혜와 힘을 일깨우고, 우리 욕망을 조절하고, 영적 성장을 위해 우리 정신력을 이용하고, 자신을 최고의 존재에 투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기 시작하는 날이 인생이 우리에게 미소 짓는 날이 될 것입니다』   마야인의 세계관은 자연의 섭리를 존중하며 인류의 영광스러운 기원과 더 높은 삶의 목적을 되찾으려는 확고한 약속입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의 글에서 우리는 보편적 진리를 발견합니다. 절대적 고요, 또는 『보지 않고 보기』를 통해 우리는 시공간에 영향받지 않는 다른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마야인의 세계관은 삶에 대한 태도이며 접근입니다. 우리가 현실에 대한 인식을 하고 사는 걸 배우는 방식입니다. 만물은 완전합니다. 생명의 연속성에서 분리된 것은 없습니다. 모든 행동은 연결되며 우주의 힘, 즉 자연과 지구 에너지의 표현에서 한 부분을 형성합니다. 이러한 수렴은 우주 의식의 상태에서 발생합니다.   존재는 연속체이며 현실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사의합니다. 이것은 창조주와 조물주의 힘이며 세 단계의 현실 즉 지하세계, 세상, 하늘 위 세상을 연결합니다. 이들 각각은 에너지가 나타나고 특정 경향을 유발하는 속성을 가진 방향과 연관됩니다. 이러한 모든 창조의 화현이 나흐트, 즉 시공간에서 일어납니다. 「만물은 이 태피스트리의 일부로 존재합니다」라고 돈 파스쿠알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존재라는 경이 속에서 한 가닥 실입니다. 우리는 우주를 본 따 형상화한 현실에 살며 별들의 움직임에 맞춰 진동합니다. 이 현실은 오직 나흐트에만 존재하며 우리가 카투네스의 바퀴, 즉 시간의 소용돌이를 멈추는 순간 사라집니다.   삶의 진화는 이 무한한 길을 따라가는 여정이며 우리가 이런 여정을 중단할 때 우리는 존재의 대립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시간을 멈추면 다른 차원을 발견하고, 이것은 꿈이나 절대적인 고요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5초마다 눈을 깜빡이고 이때가 세상을 바꾸는 마음을 붙잡는 시간입니다. 잠시 눈 깜빡임을 멈추고 「보지 않고 보기」나 어떤 것에도 집중하지 않으면 현실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 엄청난 힘과 정신력을 가져야 하는데, 현실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 엄청난 공포가 엄습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눈을 깜빡이는 이유이며 현실과 연결을 끊지 않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내면의 눈으로 보는 실상을 언제나 기억해야 하면 환상은 외면의 눈에서 생깁니다」』 돈 카를로스 바리오스 씨의 『운명의 서: 고대 마야인과 2012년에 대한 예언의 비밀을 밝히다 』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는 다음을 방문하세요. archive.org.
지혜의 말씀
2020-05-25   211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25

동물을 보호하는 신성한 율법 - 유대인 학자 아사 케이사르(비건): <장님 앞에서> 발췌, 2부 중 2부

00:15:41

동물을 보호하는 신성한 율법 - 유대인 학자 아사 케이사르(비건): <장님 앞에서> 발췌, 2부 중 2부

이스라엘의 존경받는 종교학자인 아사 케이사르 씨는 이스라엘과 전 세계에 비거니즘을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신의 피조물에 대한 강한 헌신과 자비로 아사 케이사르 씨는 이스라엘 전역의 대학, 초등학교, 고등학교, 예시바(유태교 종교 교육기관)에서 자주 강연합니다. 그의 연설은 특히 현대 세계에서 동물 제품 소비의 부당함을 신성한 토라의 말씀을 통해 해석합니다. 아사 케이사르 씨의 용감한 메시지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매일 수백만 명에게 전해지고 그의 발언은 인터넷에서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케이사르 씨는 중요한 유대인 안내서 『눈먼 자 앞에서』의 저자입니다. 이 책은 토라, 예언서, 미슈네 토라, 탈무드,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유대인 영적 지도자와 종교법 학자들이 포함된 게오님, 리쇼님, 아크로님에서 발췌한 내용을 모았습니다.   직설적인 신성한 율법을 통해 이 책은 인간이 모든 동물을 대하는 방법이 보살핌과 자비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눈먼 자 앞에서의 따뜻한 메시지는 동물에게 어느 때보다 우리의 보호와 사랑이 필요한 이 긴급한 시기에 나왔지요. 아사 케이사르 씨는 빛나는 세계 영웅상을 수상했고 칭하이 무상사님은 그의 고귀한 활동을 정중히 응원하며 미화 2만5천 달러를 후원하셨습니다. 칭하이 무상사께서는 『신의 소중한 자녀들에게 신의 자비와 사랑을 전달하는 겸손한 도구로서 일하시며 피해를 입거나 도움이 필요하거나 혹은 좋은 일을 하는 이들에게 수년동안 모든 재정적 도움과 위로와 지지를 제공하시는 신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은 케이사르 씨의 저서 『눈먼 자 앞에서』를 계속 알아보겠습니다. 이 유대인 지혜 모음집은 옳고 그름에 대한 인간의 내적 지식을 되살리는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의 순진한 친구인 동물은 태고로부터 신성한 율법 즉 계명에 의해 보호받았습니다. 동물에 대해 『눈먼 자』에게 빛을 비추는 것이 『미츠바』(계명)이며 『다른 이들에게 심각한 위반을 경고합니다. 신은 순결한 이에게 선을 막지 않으실 것입니다』 랍비 아브라함 사하: 『완전하고 총체적 관점으로 볼 때 모든 창조물에 선하신 신의 친절함 - 어미 동물의 가슴에서 나오는 젖의 목적은 새끼에게 먹이기 위함이며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그것은 사랑하는 자녀인 어린 새끼를 어미의 젖으로 키우기 위함이며 사랑하는 어미의 젖으로 자라나는 즐거움을 가져야 합니다』   동물도 고통을 경험하는가? 마이모니데스는 말합니다. 『인간이 느끼는 고통과 동물이 느끼는 고통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식을 향한 어미의 사랑과 간절함이 지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렇듯 대부분의 생물의 타고난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나흐마니데스는 말합니다. 『동물들도 염려하며 아이를 향한 인간의 염려와 동물의 염려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자궁에서부터 자녀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지능이나 언어에 의해 결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과 동물에서 발견되는 의식의 작용입니다』 마이모니데스는 계명이 직설적이라고 이해합니다. 누구도 동물에게 고통을 가해선 안 됩니다. 나흐마니데스는 계명의 목적은 우리를 곧은 길로 나아가게 하고 인간에게 잔인함을 뿌리 뽑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랍비 삼손 라파엘 허쉬가 말하길 『인간과 마찬가지로 동물도 베이고, 밀리고, 얻어맞고, 과로하고, 두렵고 당황하며 배고픔과 목마름을 느끼고 감지합니다』 기억력의 축복을 받은 랍비들이 어떻게 동물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지 보세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현명한 자는 선을 듣고 따릅니다. 랍비 유다 하카시드는 닭을 괴롭히지 않을 만큼 주의 깊지 못할까 염려하여 닭을 기른 적이 없었지요. 그는 새를 키우는 것을 권하지 않았는데 그러면 새를 먹여야 할 책임이 생기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와 벌이 매우 크다고 말했습니다』   다음은 거룩한 조하르의 말씀입니다. 새가 와서 토라를 공부하는 탄 나임(현자 랍비들)의 머리 위에 그늘을 만들었지만 그들은 이 그늘을 누리고 싶어 하지 않았고 랍비 핀카스 벤 야이어는 그들 위에 그늘을 만드는 새들에게 그것은 큰 고통이니 『나는 동물의 노고에서 이익을 얻고 싶지 않다』고 말하여 이렇게 기록됩니다. 『그는 모든 피조물에 자비로웠습니다』   위의 일화에서 동물의 노고는 스스로 시작했으며 그들의 의지로 했고 인간의 강요는 없었습니다. 랍비 핀카스 벤 야이어는 여전히 이런 노고를 누리길 원치 않았습니다. 동물에게 주는 고통과 아픔에 대한 감수성은 전 세대에 걸쳐 이스라엘 위인들의 영혼에 존재했습니다. 이것과 관련해 랍비 삼손 라파엘 허쉬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기억하세요! 신의 토라는 만물을 사랑하며 당신이 동물에게 불필요한 아픔과 고통을 주는 것을 그만둘 때뿐 아니라 우연히 고통과 괴로움에 빠진 동물을 보고 그 고통에서 당신 잘못은 없고 아무 상관이 없을지라도 동물을 구하고 동물의 고통과 괴로움을 덜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신은 당신을 사랑할 것입니다』   육식에 대한 토라의 태도 하라브 이츠카크 하반스트레이트: 『전통과 윤리, 종교와 지혜에 따르면 육식이 부적절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장기를 분석하면 인간에게 육식이 맞지 않음이 입증됐기에 그것은 부자연스럽지요. 사람은 천국의 이슬과 대지의 기름과 땅의 곡물과 초목과 나무 열매를 먹고 살도록 창조됐고 사람의 장기는 우리가 육식동물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우리는 또한 인간은 육식하도록 설계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데 소, 양, 염소, 닭 같은 생명체를 볼 때 그들을 먹고 싶은 내면의 충동이나 욕망이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날고기는 우리 안에 어떤 욕망이나 식욕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되레 그것은 역겨우며 보기에도 혐오스럽지요. 하지만 야채나 나무의 과일 같은 것에 대해서는 자연적으로 다르게 반응합니다.   그들은 강하고 정상적인 감정을 일으키며 우리를 사랑스럽게 부릅니다. 『바라보기에 경이롭고 먹기에 좋았노라』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이 창조된 대로 신선한 것을 먹고 과일을 맛보고 싶다는 큰 욕망이 깨어납니다. 이것이 사람을 위한 타고난 양식이라는 충분한 증거가 아닐까요? 육식은 인간에게 부자연스러우므로 육식은 인간을 해치고 생명을 단축합니다. 사람이 자연을 거스르면 자연이 그들을 허용하고 나날을 채워주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자연은 자신을 거스르는 자를 용납하지 않으니까요. 인간이 원하는 대로 하며 자연도 원하는 대로 하면 그들 사이에 조용하지만 심각한 전쟁이 일어나고 그 정도가 넘치면 자연은 그들을 뱉어냅니다. 토라의 말씀처럼 『나는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데려왔다』   인간은 단지 죽기 위해 창조되지 않았으며, 그의 문제는 오직 폭식과 지나친 탐닉의 결과입니다. 대부분의 의학 전문가는 책에서 모든 질병이 육식 기반의 식단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자연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약은 여러 식물로 만듭니다. 병든 자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서 회복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탈무드의 금언처럼 『렌즈콩을 주기적으로 섭취하는 사람은 가정에서 질병을 예방하며 겨자는 가정에서 불편함을 예방한다』 그들은 말합니다. 사람이 정해진 것을 먹는다면 소화가 힘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육식을 한다면 그 조직이 육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채식을 위해 만들어졌기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지혜의 말씀
2020-05-23   158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23

동물을 보호하는 신성한 율법 - 유대인 학자 아사 케이사르(비건): <장님 앞에서> 발췌, 2부 중 1부

00:13:47

동물을 보호하는 신성한 율법 - 유대인 학자 아사 케이사르(비건): <장님 앞에서> 발췌, 2부 중 1부

이스라엘의 존경 받는 종교학자인 아사 케이사르 씨는 이스라엘과 전 세계에 비거니즘을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신의 피조물에 대한 강한 헌신과 자비로 아사 케이사르 씨는 이스라엘 전역의 대학, 초등학교, 고등학교, 예시바(유태교 종교 교육기관)에서 자주 강연합니다. 그의 연설은 특히 현대 세계에서 동물 제품 소비의 부당함을 신성한 토라의 말씀을 통해 해석합니다. 아사 케이사르 씨의 용감한 메시지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매일 수백만 명에게 전해지고 그의 발언은 인터넷에서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케이사르 씨는 중요한 유대인 안내서 『눈먼 자 앞에서』의 저자입니다. 이 책은 토라, 예언서, 미슈네 토라, 탈무드, 그리고 과거와 현대의 유대인 영적 지도자와 종교법 학자들이 포함된 게오님, 리쇼님, 아크로님에서 발췌한 내용을 모았습니다.   직설적인 신성한 율법을 통해 이 책은 인간이 모든 동물을 대하는 방법이 보살핌과 자비임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눈먼 자 앞에서의 따뜻한 메시지는 동물에게 어느 때보다 우리의 보호와 사랑이 필요한 이 긴급한 시기에 나왔지요. ♥아사 케이사르 씨는 빛나는 세계 영웅상을 수상했고 칭하이 무상사님은 그의 고귀한 활동을 정중히 응원하며 이화 2만5천 달러를후원하셨습니다. 칭하이 무상사께서는 『신의 소중한 자녀들에게 신의 자비와 사랑을 전달하는 겸손한 도구로서 일하시며 피해를 입거나 도움이 필요하거나 혹은 좋은 일을 하는 이들에게 수년동안 모든 재정적 도움과 위로와 지지를 제공하시는 신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제 케이사르 씨의 저서 『눈먼 자 앞에서』를 소개하겠습니다. 다음 문장은 동물에 대한 올바른 대우에 초점을 맞추며 소중한 공동거주자를 해치는 자들이 초래한 수많은 부정적인 결과 중 일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자료의 공유는 『계명을 위한 것』이며 『다른 이에게 심각한 죄악을 경고합니다. 신은 순결한 자의 선을 막지 않습니다』 사람은 또한 동물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동물에게 부당한 고통이나 괴로움을 주는 건 금지됐기 때문입니다. 자비심은 이스라엘의 씨앗인 아브라함의 자손의 표식입니다. 기록된 것처럼 『그분은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몇 배로 돌려주시느니라』 창세기로부터 인간에게 고기를 먹는 것이 금지됨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조셉 알보 랍비: 『동물을 죽이는데 수반되는 강력한 잔인함과 분노와는 별개로 사람은 멋대로 피를 흘리는 부정적인 행동에 스스로 익숙해집니다. 살아있는 생명체의 살을 먹으면 영적 막힘과, 어두움, 영혼의 경직성을 낳습니다…』 하라브 아브라바넬: 『그러므로 인간이 초목만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만 허용됐던 창조의 초기에 인간의 수명은 더 길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기 시작하자 오늘날 우리의 수명으로 줄었습니다』 『사람이 초목에서 영양을 공급받는 것은 좋고 매우 적절합니다. 반면에 고기를 먹는 건 정반대인데 그것은 뜨겁고 끓고 있는 붉은 피를 내보내며 잔인함과 분노를 끌어내고 악의로 다른 이를 짓밟게 하며 부패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소망은 최초의 인간의 길을 바로 잡고 의로움으로 인도하며 그가 성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과일과 초목에서 건강에 좋은 식물의 영양분을 섭취하되 고기를 먹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말빔: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 육식동물에게 살아있는 동물을 찢어서 잡아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장차 세상이 바로잡힌다면 사자와 소는 모두 짚을 먹을 것이며 또한 사람에게도 육식이 허용되지 않을 겁니다. 연구자들은 이빨과 어금니의 구조에서 볼 수 있듯이 인간은 고기를 먹도록 설계되지 않았음을 밝혔습니다. 초식동물은 본능적으로 식물을 먹으며 인도의 많은 사람도 과일을 먹고 살고 더 온화한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성찰하는 랍비의 말과 반드시 그것을 지켜야 할 범위를 인용하겠습니다. 동물은 말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동물을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명시하는 우리 랍비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토라는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금합니다.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금하는 것이 (차아르 바알레이 챠임) 토라의 계명입니다.   동물에게 부당한 고통을 주는 것을 토라에서는 금지하며 이것은 로쉬, 리프, 람밤과 대다수의 리쇼님(주요 랍비)와 아크로님(유대법 결정자)의 의견입니다. 차아르 바알레이 챠임(생명체의 고통)을 방지할 목적으로 동물에 관한 다른 계명 외에도 사람은 자신의 동물을 먹이기 위해 손해를 감수할 의무가 있습니다. 금전적 이익을 위해 이런 계명을 어기는 건 금지됩니다. 차삼 소페르가 유대교 율법집에서 기록했습니다. 『차아르 바알레이 챠임을 야기하는 걸 엄격하게 금지함을 분명히 하며 모두가 이것에 동의하고 관대해져선 안 됩니다』   모셰 파인스타인 랍비(이 의인에 대한 회상이 축복이 되길 빕니다)가 기록하길 『동물에게 부당한 고통과 아픔을 주는 것은 금지됩니다. 동물에게 제멋대로 고통을 줄 권리는 사람에게 없으며 동물이 먹으려고 하지 않은 것을 먹이는 건 금지됩니다. 동물이 먹이로 인해 불편함을 느끼며 결과적으로 질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빔이 말했습니다: 차디크(의인)은 의롭게 행동하는 사람으로 그들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올바르게 행동합니다. 그들은 동물의 본성을 알기에 적절한 시간에 먹이를 줍니다. 이것 역시 지혜와 의로움의 율법입니다. 토라에 기록됐듯이 『너희들의 동물을 위해 들판의 풀을 주겠다』고 했으며 그 후에 『너희는 배불리 먹을 것이다』 이런 순서에서 우리는 동물에게 부당한 고통을 주는 것이 토라의 율법에서 금지됨을 배우게 됩니다. 이러한 할라치크(유대교 종교법에서 나온)와 철학적 입장은 이스라엘의 각 세대 명사의 의견입니다.   라쉬: 『의로운 자는 자신이 보살피는 동물의 본성을 알며, 특히 자신의 동물에게 필요한 것을 알지요』 라쉬: 『남편과 아내에게 살생이나 육식은 허락되지 않았으나 모든 야채는 먹을 수 있습니다』 메추다트 데이비드: 『의인은 자기 동물의 갈망을 충족하기 위해 동물의 필요에도 관심을 기울입니다. 하나님은 자비를 매우 중시하시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말씀
2020-05-22   177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22

플라톤(채식인)의 향연: 사랑에 대하여 - 소크라테스와 만티네아에서 온 디오티마의 대화, 2부 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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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채식인)의 향연: 사랑에 대하여 - 소크라테스와 만티네아에서 온 디오티마의 대화, 2부 중 2부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기원전 470년경 태어났지요. 많은 이들은 그를 서구 철학의 아버지로 생각하며, 어떤 이들은 그가 통찰력 있는 교사이자 깨달은 스승이라 합니다. 그와 그의 인생 철학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는 그의 사후에 제자인 플라톤과 크세노폰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이들 제자는 여러 권의 책 속에 그들 스승을 묘사했는데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지상에서 개개인의 주목적은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가족, 직업, 사회적 책임에 집중하고 있으나 사실 자기 영혼의 행복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생명에 대한 자비심으로 소크라테스는 채식을 따르고 장려했습니다.   플라톤의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철학적 저술 중 하나는 『향연』입니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와 다른 사람들이 주로 사랑과 사랑이 나타나는 다양한 방식, 영적 진보를 얻기 위한 초월적 길에 대한 소중한 대화를 보내드립니다. 오늘도 소크라테스와 만티네아 출신 디오티마의 매혹적인 대화를 계속 보내드립니다. 그녀는 그리스의 예언자이자 여사제이며 숭고한 사랑의 문제에서 이 철학자의 교사입니다. 플라톤의 저서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는 사랑에 관한 디오티마의 설명을 떠올립니다.   ♧『디오티마여, 나는 이미 당신에게 말했습니다. 나의 무지가 이유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온 이유는 선생이 필요함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것의 원인과 사랑의 다른 신비를 말해 주십시오』 그녀가 말하길 『놀랍지는 않군요. 우리가 여러 번 확인했듯이 에로스가 신인 것을 믿는다면 여기서 다시 같은 원칙이 있습니다. 인간 본성은 최대한 영원하고 불멸이 되기를 추구합니다. 이것은 오직 출생으로 달성하는데 출생은 항상 낡은 장소에서 새로운 존재를 뒤에 남겨둡니다. 같은 개인의 삶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연속성이 있지만 완전한 단일체는 아닙니다. 동일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짧은 기간 동안 젊음과 노년 시절이 지나갑니다. 각 동물 안에도 삶과 주체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손실과 배상의 끊임없는 과정을 진행합니다. 머리, 살, 뼈, 피, 그리고 온몸이 항상 바뀌고 있습니다. 육신만이 그런 것이 아니고 정신도 그렇습니다. 습관, 기질, 견해, 욕망, 즐거움, 고통, 두려움이 우리 중 누구에게도 같은 것으로 남지 않고 항상 왔다가는 가버립니다. 지식도 참으로 그러한데 여전히 우리 인간에게 더 놀라운 것은 학문만 일반적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신뢰하는 우리도 절대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 각자는 비슷한 변화를 경험합니다. 회상이라는 말속에 암시하고 있는 것은 지식의 이탈인데 그것은 결코 잊히지 않고 회상에 의해 새롭게 되고 보존됩니다.   그리고 같은 것이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것입니다. 모든 사멸하는 것이 보존되는 승계의 법칙에 따릅니다. 절대적으로 같은 것이 아니고 대용품입니다. 늙고 낡은 죽을 운명의 것은 다른 새롭고 비슷한 존재를 뒤에 남기는데, 항상 같으며 다르지는 않은 신과는 다르지요? 소크라테스여, 이처럼 인간의 육체나 죽을 운명의 어떤 것도 불사에 속합니다. 그러나 불멸의 다른 방식입니다. 그때 사랑은 신기한 게 아니며 그것으로 모든 사람은 자손을 갖습니다. 그래서 우주적 사랑과 관심은 불멸을 위한 것입니다. 나는 그녀의 말에 놀라서 『이것이 진짜인가요? 오, 현명한 디오티마여』 그녀는 완성된 소피스트의 모든 권위를 갖고 대답했습니다.   『오 소크라테스여, 당신은 확신할 것입니다. 단지 인간의 야심만을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들 방식의 무감각함에 놀랄 것입니다. 아니면 불후의 명성에 대한 사랑으로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자녀를 위해서 보다 훨씬 큰 모든 위험을 안을 준비를 합니다. 돈을 쓰고 어떠한 수고도 감수하고 심지어 죽기도 하는데 그들의 뒤에 영원한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지요. 『나는 설득 당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온갖 일을 하고 불멸의 덕에 대한 찬란한 명성을 바라며 불멸의 욕망을 위해 그들이 더 훌륭할수록 더 많은 일을 합니다』 『몸으로 임신한 그들은 오직 여인에게 의지해서 아이를 낳는데 이것이 그들 사랑의 특징입니다.   그들 자식은 그들의 소망대로 그들의 기억을 보존할 것이고 그들에게 축복과 그들이 소망하는 미래의 불멸을 줍니다. 그러나 수태한 영혼들은 그들의 육신보다는 그들 영혼에서 더 창조적이고 확실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영혼을 생각하거나 포함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무슨 개념입니까? 일반적으로 지혜와 덕성이죠. 그러한 창조자들은 시인과 모든 예술가이며 발명가란 이름을 받을 만합니다. 그러나 가장 위대하고 가장 좋은 종류의 지혜는 틀림없이 국가들의 명령과 가족에 관련된 것으로 절제와 정의라고 부릅니다』 『이것들은 사랑의 더 작은 신비들이고 소크라테스여, 당신도 들어갈 수 있습니다.   더 크고 더 감춰진 것들이 이것들의 왕관인데, 만일 당신이 올바른 정신으로 그것을 추구하면 인도받을 것인데 당신이 얻을 수 있는지는 나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최선을 다해 당신에게 알려줄 것이니 할 수 있으면 따라오십시오. 이 문제에서 확실하게 나아가려면 젊을 때 시작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을 방문해야 합니다. 처음에 그가 교사에게 확실하게 지도를 받는다면, 오직 그런 형태의 사랑을 하면, 즉 그가 공정한 사상을 창조해야 함에서 벗어나면 곧 그는 한 형태의 아름다움이 다른 것의 아름다움과 유사함을 스스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만일 일반적인 형태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 모든 형태의 아름다움은 모두 같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그는 참으로 바보입니다.   그가 이것을 인지하는 때 그는 그것에 관한 격렬한 사랑이 줄어들고, 그것을 경멸하게 되고 작은 일로 간주하며 모든 아름다운 형태를 사랑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다음 단계로 그는 마음의 아름다움이 외부 형태의 아름다움보다 더 고귀한 것으로 간주할 것입니다. 그러니 만일 고결한 영혼이 별로 예쁘지 않더라도 그는 기꺼이 사랑할 것이고 그를 돌봅니다. 그는 찾아낼 것이고 사상을 생산할 것입니다. 그것은 젊은이를 향상하며 결국 그는 관조하게 됩니다. 규칙과 법률의 아름다움을 알고 그들의 아름다움은 모두가 한 집단이고 개인적 아름다움은 사소한 것임을 이해합니다. 그 후에 그는 법률과 규칙을 학문으로 계속하며 그 아름다움을 보고 젊은이의 아름다움이나 사람 또는 규칙이나 자신을 종으로 생각하는 편협한 마음을 가진 사랑의 노예와 같지 않고 그 대신 사랑의 거대한 바다를 향해 다가가고 관조합니다. 많은 공정하고 고귀한 사상과 개념을 지혜의 무한한 사랑으로 창조할 것입니다』
지혜의 말씀
2020-05-21   172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21

플라톤(채식인)의 향연: 사랑에 대하여 - 소크라테스와 만티네아에서 온 디오티마의 대화, 2부 중 1부

00:11:23

플라톤(채식인)의 향연: 사랑에 대하여 - 소크라테스와 만티네아에서 온 디오티마의 대화, 2부 중 1부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기원전 470년경 태어났지요. 많은 이들은 그를 서구 철학의 아버지라 생각하며, 어떤 이들은 그가 통찰력 있는 교사이자 깨달은 스승이라 합니다. 그와 그의 인생 철학에 관한 대부분의 정보는 그의 사후에 제자인 플라톤과 크세노폰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이들 제자는 여러 권의 책 속에 그들 스승을 묘사했는데 소크라테스가 주인공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지상에서 개개인의 주목적은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가족, 직업 사회적 책임에 집중하고 있으나 사실 자기 영혼의 행복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생명에 대한 자비심으로 소크라테스는 채식을 따르고 장려했습니다.   플라톤의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철학적 저술 중 하나는 『향연』입니다. 이 책은 소크라테스와 다른 사람들이 주로 사랑과 사랑이 나타나는 다양한 방식, 영적 진보를 얻기 위한 초월적 길에 대한 소중한 대화를 보내드립니다. 이제 플라톤의 유명한 저서 『향연』을 발췌해서 읽겠습니다. 이 책은 연회에 참석한 저명인사를 묘사하며 그곳에서 그들은 철학적인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한 대화에서 소크라테스가 예언자이자 여사제인 디오티마와 나눈 사랑의 개념과 본질에 관한 대화를 회고합니다. 이 디오티마와 대화는 사랑을 『위대한 영』으로 부르며 플라토닉러브란 개념의 기원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묻기를 『그럼 에로스는 무언가요? 인간인가요?』 『아닙니다』 『그럼 무언가요?』 『앞의 경우에서처럼 그는 인간도 아니고 신도 아니고 그 둘 사이에 있습니다』 『그는 무엇인가요?』 『위대한 신령(다이몬)으로 모든 신령처럼 그는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간자입니다』 내가 말하길 『그러면 그의 힘은 무엇인가요?』 그녀가 대답하기를 『그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해석하고 사람의 기도를 신들에게 가져가고 사람에게 신의 명령과 대답을 옮겨줍니다. 그들 양자의 가운데 있으며 그들 사이를 메워 주고 그래서 그 전체가 자신과 이어지게 합니다. 온갖 예언자와 사제들의 기술도 그리고 온갖 예언, 주술도 이것을 통해 길을 찾습니다.   신은 인간과 직접 섞이는 게 아니라, 바로 사랑을 통해 깨어 있건 잠들어 있건 간에 인간들과 교류하고 대화합니다. 이런 일들에 관해 지혜로운 자는 신령합니다. 이제 이 신령들, 즉 매개자의 힘은 많고 다양한데 그중 하나가 에로스입니다. 상황의 참모습은 이것입니다. 신은 지혜를 좇는 철학자나 탐구자가 아닌데 이미 현명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를 찾는 어떤 인간도 지혜롭지 않습니다. 또한 무지한 자는 지혜를 찾지 않습니다. 무지가 다루기 어려운 것은 선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지만 자신에게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족한 줄 모르면 욕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말했지요. 『그러면 디오티마여, 누가 지혜를 사랑하나요? 만일 그들이 현명하지도 어리석지도 않다면요』   그녀가 대답하기를 『어린아이가 그 질문에 대답할 것입니다. 아이는 지혜와 무지의 가운데 있습니다. 에로스도 그들 중 하나죠. 지혜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고, 에로스는 아름다움에서 나왔기에 에로스도 역시 철학자이며 지혜를 사랑합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자는 현명한 자와 무지한 자의 중간자입니다』 『아름다움을 사랑할 때 무엇을 원할까요?』 디오티마가 물었습니다. 내가 그녀에게 답하기를 『아름다움이 그의 것이죠』 그녀가 말하기를 『여전히 그 대답은 더 많은 질문을 시사합니다. 아름다움을 소유하면 무엇을 얻나요?』 내가 대답했습니다. 『무엇을 묻는 것인가요? 답이 준비되지 않았어요』 그녀가 말합니다.   『그러면 아름다움의 자리에 선이라는 말을 넣고 한 번 더 질문을 반복하겠습니다. 만일 선을 사랑한다면 무엇을 사랑할까요?』 내가 답했습니다. 『선을 소유하는 것이죠』 『선을 소유하면 무엇을 얻을까요?』 내가 답하길 『행복이죠. 이 질문의 답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녀가 말하길 『그래요, 선한 것을 얻으면 행복해집니다. 인간이 왜 행복을 원하는지 물을 필요는 없지요. 그게 최종적인 답이니까요』 내가 말하길 『맞습니다』 『그러면 이 바람과 욕망은 모두에게 공통된 걸까요? 모든 사람이 항상 자신의 선을 원하나요? 아니면 일부만 원하나요? 어떻게 보십니까?』 내가 답하길 『모두입니다. 모두가 그걸 바라죠』   그녀가 말하길 『그럼 왜 모두가 다 사랑한다고 하지 않고 어떤 자들만 그렇게 말하나요? 그런데 당신은 모든 사람이 항상 같은 것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군요』 내가 말하길 『저도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그녀가 답하길 『이상할 게 없습니다. 사랑의 한 부분이 분리되어 그 전체의 이름을 받지만 다른 부분들은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를 들어달라고 하자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시가 있는데, 알다시피 그것은 복잡하고 다면적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모든 창작이나 문장은 시이거나 작품입니다. 모든 예술의 과정은 창조적이며 모든 예술의 거장은 모두 시인이나 창작자죠』 『정확합니다』   그녀가 말하길 『알다시피 여전히 그들을 시인으로 부르지 않고 다른 이름이 있지요. 나머지 부분에서 분리된 예술의 한 부분만이 시인입니다. 즉 음악과 운율(시의 리듬)이 있어야 시라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시를 짓는 사람만 시인으로 부릅니다』 내가 말하길 『맞아요』 『사랑도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선과 행복에 대한 욕망은 단지 사랑의 크고 미묘한 힘입니다. 어떤 다른 길을 통해 그에게 끌렸다면 돈벌이나 체력단련, 철학을 통해서라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전체의 이름을 오직 한가지 방식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그들만 사랑한다고 또는 사랑하는 자라고 부릅니다』   내가 답하길 『맞습니다』 그녀는 말하길 『사람이 선을 사랑함은 진리입니다』 내가 말하길 『맞아요. 거기에다가 선을 소유하길 좋아함을 더해야 하겠지요?』 『네 그걸 더해야 해요』 『단지 소유만이 아니라 선을 영원히 소유하길 원하는 거죠?』 『그것도 더해야 합니다』 그녀가 말하길 『그러면 일반적으로 사랑을 선의 영원한 소유로 묘사해야 하겠지요?』 『가장 적합합니다』 그녀가 다양한 시기에 사랑에 대해 말할 때 이 모든 걸 가르쳐 주었죠. 그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합니다. 『소크라테스여, 무엇이 사랑의 원인이고 수반되는 욕망입니까? 모든 동물, 새와 짐승이 출산을 원할 때 고통을 겪는 걸 당신은 봅니다. 그들이 사랑에 빠질 때 결합의 욕망이 시작됩니다.   거기에서 자식을 돌보는 것이 더해지고 가장 약한 존재를 위해 가장 강한 존재, 심지어 극도로 강한 존재와 싸우려 하며 그들을 위해 죽고 자신은 굶주림으로 고통받거나 어린 자식을 지키려고 모든 걸 견딥니다. 사람은 이성에 의해 행동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동물에게 열정적 감정이 있을까요? 이유를 말할 수 있나요?』 나는 다시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녀가 내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사랑의 기술에서 이것도 모르면서 거장이 되기를 고대한 적이 있나요?』 『디오티마여, 나는 이미 당신에게 말했습니다. 나의 무지가 이유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온 이유는 선생이 필요함을 자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것의 원인과 사랑의 다른 신비를 말해 주십시오』
지혜의 말씀
2020-05-20   201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20

차트랄 상게 도르제 린포체(채식인)의 저술: 조언의 말, 2부 중 2부

00:15:12

차트랄 상게 도르제 린포체(채식인)의 저술: 조언의 말, 2부 중 2부

티베트 불교는 소승불교, 대승불교, 밀교전통 등 부처님 가르침의 모든 범위를 아우르며 수행의 폭넓은 영역에서 발현된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진 종교입니다. 티베트 불교에 속하는 다른 그룹들은 파드마삼바바에 의해 세워진 닝마파, 틸로빠에 의해 창설된 카규파, 강촉겔포와 그의 아들 군가 닝포에 의해 창설된 사캬파, 총카파 롭상닥파가 창설한 겔룩파가 있습니다. 티베트 불교의 교리는 티베트 불교의 교리는 죽음을 마음에 새기며 삶의 무상함에 초점을 두고 명상과 영적 수행에 전념하도록 인도합니다. 만다라, 기도 깃발, 탱화 등은 이 길을 가는 수행자를 시각적으로 일깨워줍니다. 1913년 티베트에서 태어난 차트랄 상게 도르제 린포체는 어린 십대 때 집을 떠나, 당시 매우 존경받는 여러 영적 스승에게 배우고 수행하기 위해 도보로 여행했습니다.   티베트 섭정왕의 개인 구루로 잠시 생활하다가 그는 다시 한번 세속의 삶에서 벗어나 산속 동굴에서 혼자 여러 해를 명상했습니다. 그래서 은둔자란 뜻의 『차트랄』이란 이름을 받았습니다. 차트랄 린포체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로서 도살될 운명이었던 수백만 마리의 어류를 구매한 다음 인도양의 보호구역으로 풀어주었습니다. 차트랄 상계 도르제 린포체는 생전에, 그리고 102세에 열반한 후에도 가장 높이 깨달은 티베트 불교 스승의 한 분으로 여겨집니다. 오늘은 차트랄 상게 도르제 린포체의 저서 『조언의 말』을 소개하겠습니다.   ♧구루에게 귀의합니다! 사랑을 갚을 길 없는 소중한 페마 레드렐 찰 스승님이 제 정수리의 왕관 장식으로 있기를 기도하옵니다! 당신 축복으로 윤회와 낮은 세계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서 자유를 찾게 하소서! 여기 모인 사랑하는 제자들이여, 잘 들으세요. 마음이 그릇되지 않은 모든 이들은 이것을 고려하십시오. 인간이 될 기회는 백 번에 한 번일 뿐입니다. 이제 하나를 찾았으니 고귀한 법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어찌 그런 기회를 다시 찾기를 기대할까요? 그래서 자신의 상황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몸을 하인이나 자신을 운반하는 탈것으로 생각하며 단 한 순간도 나태하게 두지 마십시오. 몸을 잘 이용하고, 온몸과 말과 마음이 덕으로 향하도록 애쓰세요. 평생을 음식과 옷만 좇는 데 보내거나, 고통을 주는 것이나 해로운 행위를 개의치 않으며 애쓸 수 있지만 죽을 때는 단 한 가지도 가져갈 수가 없으니 잘 생각하십시오.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옷이 있고 탁발만 하면 됩니다. 고기와 술로 식사를 맛있게 할 수도 있지만 바로 다음 날 아침 그것은 더러운 것으로 변하고 그 이상은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러니 생명을 유지하는 음식과 간단한 옷에 만족하고 음식, 옷, 사교에 관한 한 패자가 되십시오.   죽음과 무상함에 대해 관조하지 않는다면 부처님 법을 온전히 수행할 방법이 없고, 수행은 끊임없이 미루어지는 열망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는 날 후회할 것이나 그때는 이미 늦을 것입니다. 육도 중생 중 어느 중생에게도 진정한 행복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삼악도의 고통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듣기만 해도 기분이 나쁘다면 여러분이 직접 그것을 겪을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삼선도의 행복과 즐거움조차도 독이 든 훌륭한 음식과 마찬가지라서 처음에는 즐겁지만 장기적으로는 파멸의 원인입니다. 게다가 쾌락과 고통의 이 모든 경험을 바로 자신이 초래합니다.   그것은 좋든 나쁘든 자신의 행동으로 생겨납니다. 일단 이것을 알면 어떤 것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당황하지 않고 적절히 행함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의구심과 오해를 없애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스승의 교육에 따르는 것이 다른 많은 가르침을 배우면서도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육체적으로는 고립되어 외딴곳에 있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일상의 걱정을 버리지 못하고, 애착과 혐오감을 가지고 적에게 패배를 주려 하고, 친구들의 이익은 늘리려고 하며 온갖 사업과 금전 거래에 참여한다면 말입니다.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으로 만족하지 않으면 온갖 쓸데없는 것들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평범한 사람보다 더 나쁘게 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수행의 첫 단계도 지나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니 모든 것에 대한 욕구에서 마음을 자유롭게 하세요. 부와 성공과 지위는 모두 그저 적과 악마를 끌어들입니다. 이 생활의 염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수행자는 진정한 부처님 법과 연결을 끊은 것입니다. 가르침을 완강히 거부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몇몇 활동에만 제한을 두고 그것만을 부지런히 하도록 하십시오. 마음이 안절부절못하게 두지 말고 안거하는 오두막의 자리에서 편히 지내세요. 이것이 부처님 법의 수행자가 부를 얻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몇 달 혹은 몇 년간 엄격한 안거를 하며 왕래하지 않더라도 마음의 상태에서 어떤 진전도 이루지 못한다면 나중에 그렇게 오랫동안 여러분이 했던 일을 모두에게 말할 때, 그것은 단지 자신의 모든 고난과 궁핍을 과시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들의 칭찬과 인정은 모두 자신을 자랑스럽게 만들 뿐입니다. 적에게 학대를 받는 것이 최고의 고행입니다. 허나 비판을 싫어하고 칭찬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모든 결점을 찾으려고 많은 애를 쓰면서도 자신의 마음가짐을 제대로 경계하지 못합니다. 항상 짜증을 내고 성급한 사람은 모든 동료에게 삼매야계를 깨뜨리게 하니 끊임없이 조심하고 경계하며 주의하고 지내세요.   어디에 머물든지, 붐비는 곳에 있거나 홀로 안거하거나 여러분이 극복해야 할 유일한 것은 마음의 다섯 가지 독과 자신의 진정한 적인 8가지 세속적 관심이며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을 피하거나 변화시키고 그것들을 길로 삼거나 그 본질을 살펴보고 어떤 방법이든 자신의 능력대로 하십시오. 훈련된 마음만큼 성취의 좋은 표식은 없습니다. 무기를 가지지 않은 진짜 전사에게 이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경전과 탄트라의 가르침을 수행할 때 이타적인 보리심과 그 실천이 바로 대승불교의 뿌리이기에 중요합니다. 이것이 있다면 충분하지만 이것 없인 모두가 사라집니다. 이 조언의 말은 쿤장 촐링 지역에서 파드마의 비밀스러운 숲, 높은 곳의 암자 숲 공터에서 늙은 탁발승 상게 도르제가 전했습니다. 덕이 높아지길 빕니다!
지혜의 말씀
2020-05-19   164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19

차트랄 상게 도르제 린포체(채식인)의 저술: 다른 존재들의 생명을 구하는 이로움, 2부 중 1부

00:15:54

차트랄 상게 도르제 린포체(채식인)의 저술: 다른 존재들의 생명을 구하는 이로움, 2부 중 1부

티베트 불교는 소승불교, 대승불교, 밀교전통 등 부처님 가르침의 모든 범위를 아우르며 영적 수행의 폭넓은 영역에서 발현된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진 종교입니다. 티베트 불교에 속하는 다른 종파들은 파드마삼바바에 의해 세워진 닝마파, 틸로빠에 의해 창설된 카규파, 강촉겔포와 그의 아들 군가 닝포에 의해 창설된 사캬파, 총카파 롭상닥파가 창설한 겔룩파가 있습니다. 티베트 불교의 교리는 죽음을 마음에 새기며 삶의 무상함에 초점을 두고 명상과 영적 수행에 전념하도록 인도합니다. 만다라, 기도 깃발, 탱화 등은 이 길을 가는 수행자를 시각적으로 일깨워줍니다. 1913년 티베트에서 태어난 차트랄 상게 도르제 린포체는 어린 십대 때 집을 떠나 당시 매우 존경받는 여러 영적 스승에게 배우고 수행하기 위해 도보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티베트 섭정왕의 개인 구루로 잠시 생활하다가 그는 다시 한번 세속의 삶에서 벗어나 산속 동굴에서 혼자 여러 해를 명상했습니다. 그래서 은둔자란 뜻의 『차트랄』이란 이름을 받았습니다. 차트랄 린포체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로서 도살될 운명이었던 수백만 마리의 어류를 구매한 다음 인도양의 보호구역으로 풀어주었습니다. 차트랄 상계 도르제 린포체는 생전에, 그리고 102세에 열반한 후에도 가장 높이 깨달은 티베트 불교 스승의 한 분으로 여겨집니다. 칭하이 무상사님은 2020년 3월 2일 『긴급 메시지』에서 더 높은 삶의 방식에 영감을 줄 수 있는 영적 및 종교적 지도자의 고귀한 자질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모든 사람은 가장 중요한 이 계율을 지켜야 합니다. 『죽이지 말라』 비폭력, 아힘사죠. 이제 인류는 창조주께서 그의 모든 자녀에게 원래 바라셨던 대로 존엄과 존중, 평화와 사랑 속에 살며 우리의 집인 지구의 훌륭한 청지기로 돌아갈 때입니다. 이 모든 것 이상을 여러분 신자들에게 상기시켜주세요. 그렇게 하셨을 줄 알지만 거듭 말해주시고 이것이 그들의 영혼과 지구와 세상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설명해주세요. 모든 동물의 고통을 끝내야 할 때입니다. 그들은 신께서 원래 의도하신 대로 자연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평화와 자유, 존엄 속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습니다. 신의 피조물들을 구해주세요. 무고한 존재들의 고통을 끝내도록 도와주세요. 우리는 서로 전쟁하고 동물과도 전쟁합니다. 이건 옳지 않습니다. 이런 행동은 옳지 않아요. 이런 행동은 신의 계명과 뜻에 어긋납니다. 신도들에게 상기시켜주세요. 이런 큰 변화를 이끌어 줄 종교 지도자 여러분의 지혜를 믿습니다. 우리는 바뀌어야 합니다.   ♧오늘은 차트랄 상게 도르제 린포체의 저서 『다른 존재들의 생명을 구하는 이로움』의 글들을 발췌해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라마와 아미타 부처님, 수행 중인 보살들 앞에 절을 합니다. 저는 이제 동물을 풀어주고 그들 생명을 돌려주는 공덕을 간략하게 설명할 것입니다. 온전히 순수한 동기와 행동으로 도살이나 치명적 위험에서 동물을 구하는 것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이 마땅히 받아들일 행위입니다.   많은 경전과 탄트라, 주석서에서 그것이 가져오는 공덕을 상세히 설명하며 인도와 티베트의 학식 있고 깨달은 수많은 스승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불법의 기본에도 다른 존재를 해치는 걸 금했습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이것이 바로 보살행이며 밀교의 비밀 만트라에선 보생계파의 주요한 삼매야계입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뺏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으며 생명을 구하고 생명을 돌려주는 행동보다 더 큰 공덕을 얻는 선행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행복과 선을 바란다면 경전과 논거를 통해 증명된 가장 최고의 길인 생명을 구하는 이 길에 힘을 다하십시오. 그러면 장애와 잠재적인 위험에서 벗어납니다.   자신의 몸이라 생각하고 그걸 본보기로 다른 중생을 해치는 어떤 일도 하지 마십시오. 새, 어류, 사슴, 소, 심지어 작은 곤충 등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도록 온 힘을 기울이고 그 대신에 모든 공포에서 보호해 주면서 그들 생명을 구하려 노력하십시오. 그렇게 하는 공덕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장수를 위한 최고의 행동이고 산 자나 고인에 대한 가장 큰 의식입니다.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게 저의 주된 수행입니다. 그것은 안팎의 모든 역경과 장애물을 없애고, 애쓰지 않고 자연스럽게 유리한 상황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보리심의 고귀한 마음에서 영감을 받으며 헌신과 순수한 서원의 기도로 완성되고 그것이 자신을 완전한 깨달음으로, 자신과 다른 존재를 행복으로 이끌 것이니 여러분은 이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어요.   미덕과 훌륭한 행동을 하고 싶은 사람은 자기 땅에서 사냥과 낚시를 금해야 합니다. 특히 기러기나 두루미와 같은 철새들은 업보에 의해 억지로 이동해야 하니 가을에는 남쪽으로, 봄에는 북쪽으로 날아갑니다. 때때로 오랜 비행에 지치거나 길을 잃으면 땅으로 내려와야 하며, 힘들고 두려워하며 불안해합니다. 그럴 때 그들에게 돌을 던지거나 총으로 쏘아 죽이려 하거나 어떤 해도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쉽게 날아갈 수 있도록 보호하십시오. 보호가 필요한 절박한 상황에 있는 중생을 보살피고 애정을 주는 것은 무아에 대한 명상만큼 많은 공덕을 가져오고 자비심이 핵심입니다. 아티샤 존자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라마승과 관리, 남녀 출가승, 남자와 여자여, 당신이 관리하는 모든 장소에서 모든 영향력을 발휘하고 온 힘을 다해 동물을 풀어주고 그들 삶을 돌려주며 남에게도 같은 일을 하도록 권하십시오. 이런 일을 하는 모든 곳에서는 사람과 가축의 질병이 사라지고 수확은 풍부하고 수명은 길어질 것입니다. 모두가 풍요 속에서 행복과 안락을 누릴 것이며, 죽게 되면 더 높은 영역에서 멋진 환생을 찾기 전에 미혹하는 경험을 겪지 않을 겁니다. 궁극적으로 이것이 최고의 완벽한 깨달음으로 쉽게 이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스카프 하나와 백 네팔 루피를 공양한 도르드락 의사의 요청에 따라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끊임없이 애쓰시는 차트랄 상게 도르제는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을 자연스럽게 기록하셨습니다. 이 공덕으로 모든 중생이 깨달은 행동을 하길 바랍니다. 마마 콜링 사만타!
지혜의 말씀
2020-05-18   256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18

아르볼 루킹 호스 추장: 흰 들소의 가르침, 2부 중 2부

00:10:31

아르볼 루킹 호스 추장: 흰 들소의 가르침, 2부 중 2부

아르볼 루킹 호스 추장은 수족 부족연합의 신성한 흰 아기들소 피리 묶음의 19대 수호자입니다. 그는 12살 때 최연소 수호자로 이 엄청난 영예를 안았습니다. 조부모의 손에 자란 아르볼 추장은 라코타 부족의 문화와 영성을 깊이 탐구했습니다. 또한 부족이 겪은 힘겨운 시간을 목격했습니다. 이는 라코타, 다코타, 나코타 부족연합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신성한 의무와 함께 평화를 향한 세계의 깊은 변화를 위해 헌신하고 원주민의 아름다운 생활방식에 대한 인식을 높이도록 영감을 주었습니다. 아르볼 루킹 호스 추장은 세계 통합의 에너지 창조와 어머니 지구에 대한 관리자 역할을 다시 시작하자고 국제적으로 호소했습니다. 화합을 위한 그의 수많은 노력 중엔 1996년에 6월 21일을 세계평화와 기도의 날로 제정한 것과 그의 중요한 책 『흰 들소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오늘 프로그램에서 아르볼 루킹 호스 추장의 저서 『흰 들소의 가르침』을 계속 읽겠습니다. 그는 세계적 치유의 중요성과 시급함을 강조하며 그래야 후세에게 더 밝은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 우리 자신이 일곱 번째 세대이다. 우리 역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 다가올 일곱 번째 세대를 기억해야 한다. 일곱 번째 세대가 지금은 우리이다. 모든 세대는 일곱 번째 세대이고 각 세대에겐 그들의 특별한 임무와 가르침이 주어진다. 우린 세계평화와 기도로 세계를 치유해야 한다. 그것이 이 세대의 임무다. 그것이 나의 임무이자 나의 친구여, 또한 당신의 임무이다. 와칸 탄칸(위대한 영, 위대한 신비)에게 받은 우리 가르침은 세계적 치유를 촉진하고 어머니 지구의 많은 나라에 평화와 화합을 가르치고 위대한 치유와 위대한 용서를 모두 시작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지구는 자원이 아니며 바로 생명의 원천임을 가르쳐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파괴의 힘이 우리를 압도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세대는 모든 미래 세대를 구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 그래서 1996년부터 매년 6월 21일을 세계 평화와 기도의 날을 정했으니 이에 앞서 2년 전 흰 들소의 여인이 경고와 구원의 표시로 우리 가운데 태어났기 때문이다. 예언에 따르면 우리는 어머니 지구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로 하는 균형과 조화의 치료법을 동류에게 가르쳐줄 중요한 인물이다. 이것이 우리가 모두, 각자가 교차로에 있다고 말한 이유이다. 이 교차로 또한 예언에 있다.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모든 생명에 영향을 줄 긍정적인 힘과 부정적인 힘을 이해하는 교차로에 서 있다.   우리 자신은 당신과 나, 우리는 모두 일곱 번째 세대를 대표하여 올바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 오래전 우리는 백 살이 넘도록 살았지만 현재는 수명이 크게 단축됐다. 한때 우리는 모두 지구에 와칸 예자(신성한 아이)로 태어난 후 각각 삶의 4단계를 거쳐 간다는 걸 이해했었다. 우리는 균형 잡힌 네 가지 삶의 주기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수명을 누렸으며 이는 치유의 바퀴에도 나타난다. 우리에겐 젊은 청년이나 아가씨가 되는 것의 모든 의미를 배울 시간이 있었다. 우리에겐 자신의 진정한 영적 이름을 얻고 우리에게 명예로운 독수리 깃털을 줄 선행을 할 시간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인내와 겸손, 공손의 의미를 배우고 우리에게 완전한 성숙을 가져올 가르침을 이해하여 마침내 장로가 되어 지혜의 수호자가 될 시간이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은 백 년 혹은 그 이상이 걸린다. 이젠 시간이 단축되어 며칠 혹은 몇 주 안에 한때 몇 달, 몇 년이 걸렸던 것을 배워야 한다. 우린 내면의 평화를 향해 나아가야 하며 분노, 증오, 질투와 우리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버리는 걸 배워야 한다. 일곱 번째 세대인 우리는 일어서서 방향을 틀고 바람을 맞으며 부족연합에 치유과정을 돌려줄 것이다. 1992년에 지구 온난화가 모든 생명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고 발표됐다.   선댄스(미국 인디언의 의식)가 있고 정확히 4일 후에 흰 아기 들소가 어머니 지구에 서 있었고 『기적』으로 이름 지었다. 내가 어릴 때 들었던 흰 아기 들소 여인의 영이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는 이야기에서 교차로를 상징하는 위대한 변화의 표식이 나타난 것이다. 내가 이 중대한 시간을 목격할 것은 상상도 못 했다. 8마리의 다른 흰 들소가 예전에 지구를 지켰다. 흰 아기들소 여인의 영은 거대한 위험을 마주한 이 시기를 격려하는 그녀의 메시지를 알렸고 흰 들소가 태어날 때마다 계속 메시지를 보냈다. 그들 각각은 표식이고 고대 예언과 우리 시대의 예언의 실현을 나타낸다.   이 성스러운 후프 예언(현대에 대한 원주민의 예언)이 실현된 후에 우린 지구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치유를 진행하고 평화의 이름으로 단결하기 위해 전 세계 치유의 날을 반드시 정해야 함을 이해했다. 후대의 생존이 1996년에 탄생한 세계평화와 기도의 날의 탄생에 달려있다. 창조주를 어떻게 믿든 상관없이 이 의식은 신성한 불을 가운데 두고 둥글게 둘러서서 영적인 에너지를 만든다. 평화를 위한 이 중요한 의식은 앞으로 다가올 긴 여정의 시작이다. 현대 과학은 우리의 예언에 예견된 위험을 확인시켜주었다.   우리는 모든 부족연합의 최대한 많은 성지가 세계평화와 기도의 날의 의식을 지속할 긴급한 필요성을 알기를 요청한다. 주변을 둘러보라. 우리의 어머니 지구는 약하고 병들었다. 우리의 무분별함이 모든 미래 세대에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 우리는 성지에 감사와 명예를 주지 않고 그 밑의 광물들을 캐어 냈다. 마치 어머니 지구가 생명의 원천이 아닌 단순한 자원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 선조는 오늘날 인공위성처럼 땅을 내려다볼 수 없었음에도 신성한 블랙힐즈(미국의 산악지대)를 『만물의 심장』이라 불렀다. 나사가 우주에서 찍은 블랙힐즈의 사진에서 당신은 그곳이 인간의 심장처럼 생긴 사실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사계절 찍은 사진을 빠르게 재생하면 신성한 블랙힐즈의 모습은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그들 참모습이다. 그들은 살아있다.   어머니 지구가 심장 박동을 멈추지 않도록 우리의 기도가 절실히 필요하다. 오래전에 장로들이 강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는 댐을 세우는 것의 위험성을 말했다. 우리는 강을 어머니 지구의 동맥으로 알고 있다. 이 자연적 흐름을 막는 것은 우리가 심장 질환을 목격하듯이 우리 신체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의 마음과 육체, 영은 자연에 대한 우리의 『생활 방식』의 영향으로 지금 문제가 생긴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둘 수 있는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심장과 간이 몸에서 뜯겨 나가도록 버려둘 수 있는가? 우리의 존재 여부는 어머니 지구의 수호자가 되는 것에 달려있음을 이해하라.
지혜의 말씀
2020-05-16   217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16

아르볼 루킹 호스 추장: 흰 들소의 가르침, 2부 중 1부

00:12:12

아르볼 루킹 호스 추장: 흰 들소의 가르침, 2부 중 1부

아르볼 루킹 호스 추장은 수족 부족연합의 신성한 흰 아기들소 피리 묶음의 19대 수호자입니다. 그는 12살 때 최연소 수호자로 이 엄청난 영예를 안았습니다. 조부모의 손에 자란 아르볼 추장은 라코타 부족의 문화와 영성을 깊이 탐구했습니다. 또한 부족이 겪은 힘겨운 시간을 목격했습니다. 이는 라코타, 다코타, 나코타 부족연합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신성한 의무와 함께 평화를 향한 세계의 깊은 변화를 위해 헌신하고 원주민의 아름다운 생활방식에 대한 인식을 높이도록 영감을 주었습니다. 아르볼 루킹 호스 추장은 세계 통합의 에너지 창조와 어머니 지구에 대한 관리자 역할을 다시 시작하자고 국제적으로 호소했습니다.   화합을 위한 그의 수많은 노력 중엔 1996년에 6월 21일을 세계평화와 기도의 날로 제정한 것과 그의 중요한 책 『흰 들소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아르볼 루킹 호스 추장의 책 『흰 들소의 가르침』은 긍정적인 세계로 변화를 위해 우리의 분명하고 확고한 선택을 요구하는 우리 행성의 중요한 시기에 대한 고대 원주민의 지혜와 예언,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 훌륭한 아르볼 루킹 호스 추장의 책에 담긴 놀라운 통찰력을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관찰자다. 우리가 증인이다. 우린 무엇이 사라졌는지, 지금 인류 역사상 이렇게 위험한 시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고 있다. 우리가 함께하지 않으면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다. 모든 부족연합의 종족인 우리가 어머니 지구에 평화와 화합과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 『난 당신의 신성함과 인간성을 존중한다. 내게도 그렇게 하길 바란다. 우리가 이렇게 중요하고 신성한 시기, 인류와 어머니 지구의 역사의 교차점에서 만난 것은 좋은 일이다. 좋은 일이다, 와스떼!』   『내가 12살 때 당시 영적 장로들이 선조의 고대 예언을 내게 가르쳤다. 그 예언들은 어머니 지구의 모든 생명체에게 닥칠 급격한 변화에 대해서다. 그 변화는 바로 지금 여기에 있다. 예언은 우리가 교차로에 있다고 말했다. 우린 혼돈과 재난 그리고 동족의 눈에서 흐르는 끝없는 눈물과 마주하거나 영적으로 평화와 화합을 이룰 수 있다. 평화의 긴급한 필요성과 세계 도처에 에너지를 바꾸도록 메시지를 전할 때다. 신성한 카누파(라코타어로 피리) 묶음의 수호자로서 세계 치유를 위한 여러분 기도를 부탁한다. 어머니 지구는 고통받는다. 그녀의 멋진 선물들- 물과 나무와 대기가 남용되고 있다. 그녀의 자녀들- 두 다리 동물과 네 다리 동물, 헤엄치거나 기어 다니고 날아다니는 생명이 소멸하고 있다.   이런 잔학한 행위가 모든 곳에서 일어난다. 우리의 친척인 동물나라는 우리 자신의 행복을 반영한다. 이 취약한 생태계의 들소와 늑대, 연어, 곰, 카리부, 독수리, 고래, 돌고래와 많은 다른 신성한 친척은 모두 위험에 처하고 고통받고 있다. 미국 원주민인 우리는 우리 형제인 동물나라가 무엇을 겪는지 본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었기에 우리는 모두 하나이다. 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 그들은 우리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우리의 고대 창조이야기는 신성한 블랙힐즈산지(미국의 산악지대)에서 일어난 위대한 경주에 대해 말한다. 두 다리 동물과 네 다리 동물의 경주였고 두 다리 동물이 이겼다. 그들 사이에 큰 회의가 시작되며 균형과 화합을 보장하는 삶을 어떻게 지킬지 토론했다.   다른 가르침에 의하면 한 들소가 다치거나 아플 때 다른 들소들이 그를 둘러싸고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우리도 서로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 많은 동물 왕국이 우리와 관계하기 위해 나서주었고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배우도록 도왔다. 독수리 왕국이 두 다리 동물에게 다가가 자신은 가장 높이 날기에 우리 기도를 위대한 영에 전하며 우리가 그를 기리는 노래를 부를 때 어머니 지구가 그와 함께 축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우리 기도가 짧고 적다면 독수리는 그 소리를 듣기 위해 더 낮게 날아야 하며 자신의 구역을 잃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곳으로 날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오늘날 우리 기도가 너무 적고 사람들이 더는 어머니 지구와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지 않으니 우리는 그 경고를 받고 있다. 이제 독수리 왕국은 쓰레기 더미와 매립지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정상적인 비행로를 잊고 경계를 잃어버렸다. 그들에게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도 일어난다. 이 새천년이 화합의 시대를 가져오거나 우리가 아는 생명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다. 굶주림과 전쟁, 독성 폐기물은 지난 천 년을 지배했던 진보와 발전의 위대한 신화의 특징이다. 어머니 지구의 심장을 보살피는 자인 우리는 파괴의 힘을 되돌려야 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매우 긴박한 시기와 장소에 있다. 후세의 운명은 우리 손에 달려있다. 우리 앞에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긍정의 길이나 부정의 길을 택할 수 있다.   영적인 길이나 물질적 길을 택할 수 있다. 그건 우리 각자, 우리 모두의 선택이다. 당신이 바로 선택하는 자이다. 당신만이 이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그렇게 되며 동족에 명예나 불명예를 줄 수 있다. 당신 자신의 결정의 결과를 피할 수는 없다. 당신 결정에, 당신 자신의 개인적인 결정에 전 세계의 운명이 달려있다. 우리는 어머니 지구를 파괴하는 유일한 종이다. 당신이 결정해야 한다. 피할 길은 없다. 이 시기에, 여기 이 장소에 온 우리 각자가 인류의 미래를 직접 결정한다. 창조주가 이토록 위험한 시기에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사람을 창조하리라 생각하는가? 나의 할머니는 모든 이들이 세상을 바꿀 만큼 크고 선한 마음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위대한 영이 우리가 다룰 수 없는 건 주지 않는다고 하셨다. 당신 자신이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임을 알라. 그것을 믿어라. 그것의 축복과 무게를 이해하라. 이 세상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당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자신이 쓸모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세세대대로 장로에서 장로에게 전해진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감춰진 위대한 신비이자 위대한 영 와칸 탄칸이 우리에게 축복해주신 『삶의 방식』에 대한 신성한 메시지이다. 각 세대는 이 메시지를 다음 세대로 전할 의무가 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마치 생명의 숨결처럼 그것을 전하고, 이는 신성하며, 반드시 진실로 전해야 한다. 우린 이것을 우리 제전과 기도, 예언 그리고 가르침을 통해 전한다.   우리 방식은 지도자가 겸손해야 하고 일곱 번째 세대를 생각해야 한다. 모든 세대는 다가올 일곱 번째 세대의 안녕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가 네 가지 기본 방향을 향할 때 바람 속에서 후세를 위한 결정을 하도록 격려하는 선조의 목소리를 듣는다. 기억하라. 일곱 세대 전에 우리 조상들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의 안녕을 위해 기도했다. 그들이 태어나지 않은 이들을 잊었다면, 우리를 잊었다면 우린 이곳에 없을 것이다. 우리의 한 예언에서 만약 사람들이 매일 새로운 날에 계속 부정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깨어날 때 이 세계로 들어올 와칸 예자(신성한 영의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고 새 생명은 영의 세계로 다시 돌아간다고 경고한다. 오늘날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죽는 많은 아기에게서 이것을 목격한다. 그렇다. 우리 자신이 일곱 번째 세대이다. 우리 역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 다가올 일곱 번째 세대를 기억해야 한다.
지혜의 말씀
2020-05-15   225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15

힐다 찰턴(채식인): 살아있는 성인들 - 예수님의 정원, 2부 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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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다 찰턴(채식인): 살아있는 성인들 - 예수님의 정원, 2부 중 2부

힐다 찰턴은 4살 때 부모와 함께 영국 런던에서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녀는 18살 때 현대 무용가로 공연하기 시작해 20년간 계속했습니다. 그 후엔 15년간 인도에서 지내며 동양의 신비주의와 명상을 연구했습니다. 힐다 찰턴은 대단히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뉴욕시에서 23년 이상 수천 명 구도자에게 진리와 용기 및 사랑의 삶에 대한 강좌를 열어 실용적인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힐다의 가르침은 자제와 베풂, 용서, 조건 없는 사랑과 신을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힐다 찰턴의 저서 『살아있는 성인들』은 그녀가 뉴욕시의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에서 했던 특별한 강좌 모음집입니다. 자기 삶의 일부였던 신성한 사람들과 성인들에 대해 사랑과 지혜 및 유머를 담아 말합니다. 이 책은 또한 진리와 용기, 사랑의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실용적 가르침을 포함합니다. 이제부터 『살아 있는 성인들 1장: 예수님의 정원』을 소개하겠습니다.   ♧ 제게 예수님이 오시고 또한 주님의 성자인 데레사 성녀와 성 마르티노 데 포레스와 성 안나도 오셨죠. 하루는 제가 아팠는데 자면서 마리아를 보았고 성모께서 두건을 쓰고 턱 밑에는 천을 댄 나이 많은 여성을 가리키시는 것을 봤습니다. 제게 이런 일은 새로웠는데 겨우 한 달 정도 그런 체험을 했을 때죠. 빨리 일어나 누구인지 알고 싶었어요. 가까운 교회로 뛰어가 찾아보니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성 안나였습니다. 그녀를 쳐다보자 저는 치유되었지요. 과거 생의 친구들을 만나 다시 그들을 기억하는 것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이해되나요? 세상에, 우리는 이생에 처음 만난 것이 아닙니다. 기억을 일깨우고 그들에게 새로 인사하는 거죠. 가끔 저는 다음번 환생에도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날지 염려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말 그리울 것 같아요. 사이 바바를 다시 볼까요? 예수님을 다시 볼까요? 성모 마리아를 다시 볼까요? 데레사 성녀도 이생에 그랬듯 제게 다시 올까요?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가 이 세상에 환생하면 그들도 따라 내려온다는 서약서에 서명하게 만들고 싶어요. 잔 다르크도 다시 올지 궁금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겠지요. 『이제 너는 강해졌으니 내가 필요 없어』 그러지 않길 바라요. 성 프란체스코와 성 요성 잔 다르크, 성 베르나데트, 모두 다시 오면 좋겠어요. 그들 모두 와서 제게 초청장을 주며 『사랑과 믿음과 용기』라고 서명해 주었거든요. 성인들이 오시면 모든 작은 기적이 일어나 용기를 주고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아, 그 작은 기적들! 그것이 우리를 계속 나아가게 합니다. 그렇죠? 그것들이 없다면 이 모든 우울함과 어둠을 어떻게 헤쳐가겠어요? 삶의 모든 것이 엉망이라고 생각할 때 그들은 뭔가 멋진 일을 해줍니다. 저 위의 그들은 정말 똑똑해요. 하루는 예수님께서 버스 밖에 나타났어요. 제가 동양의 더위와 버스 안의 먼지 및 더러움에 대해 불평할 때였지요. 버스 안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며 불평하고 있었어요. 『오 세상에, 다시 부활절이니 십자가의 죽음이 있겠군. 더는 못 참겠어』 그랬더니 창문 밖에 예수님이 계셨어요. 예수님이 창밖을 따라서 날아오며 하신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한 말씀이죠. 『아니지, 아니야. 네게는 십자가가 아니라 더 풍요로운 삶을 가져왔어』 더 풍요로운 삶, 풍요로운 많은 것을 말씀하셨지요.   주님은 모든 것을 뜻하십니다. 물질세계가 풍요롭고 감정 세계가 정화되며 정신세계도 명료하다고요. 모든 것이 풍요롭지요. 십자가의 죽음이 아니죠. 주님은 그 일을 하고 떠났고 그날 명확히 말했어요. 『풍요함이란 모든 차원에서 그러함을 뜻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드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믿고 부르고 신뢰할지 알면요. 한 힌두교 소녀는 누가 자기에게 무슨 짓을 하든지 또는 비판을 하든지 또는 심술궂은 말을 하든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든지 가까운 곳의 그분은 늘 용서한다고 합니다. 『용서와 사랑과 자비』『예수님은 늘 가까이 있다』고 말했어요. 그녀는 어제 새벽 세 시 경에 제게 그렇게 말했어요. 샨티, 네 스스로 말해 보아요. 내가 말하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우니까요.   샨티: 『힐다가 오늘 밤 예수님에 대해 말할 거라고 제게 얘기했을 때 저는 정말 행복했고 신났어요. 부활절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때이고 힐다가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게 됐으니까요. 저는 2년 전에 예수님을 알게 되어 그 후로 주님을 만나왔는데 주님은 제게 오빠이며 아버지, 친구였어요. 주님이 제게 한 것을 모두 표현할 수조차 없군요. 제가 아는 것은 삶이 어떻게 흐르든, 제가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고 얼마나 자주 넘어지든, 자신이 너무 어리석어서 얼마나 자주 자신을 발로 차버리고 싶다 느끼든 주님이 거기 계심을 알아요.   용서하시며 손을 내밀어 도와주시기 위해 거기 계심을 알지요. 그분은 정말 자비롭지요. 그분은 늘 우리 전부를 살피시며 인도하시고 돕고 계심을 느끼며 예수님과 함께라면 절대 잘못될 일이 없어요. 그분은 우리를 절대 버리지 않으실 테니까요』 모든 걸 포용하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분은 묻지 않으세요. 『세례를 받았느냐? 네 종교는 무엇이냐?』 세상의 모서리에서 오실 날을 기다리고 계시지요. 사람들이 그분의 재림에 대한 환시를 반복해 봅니다. 저는 그런 큰일은 잘 모르지만 제가 주님을 사랑함은 알지요.   모세와 예수님은 모두 희생하며 지키던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실망했어요. 모세는 산봉우리에 올랐다가 와보니 기다리며 기도하라고 당부했던 이들이 그저 어리석게 행동하는 걸 봤지요. 예수님도 기도하려고 산에 올랐다가 와보니 주님 기도를 지켜보겠다는 이들이 자는 걸 봤고요. 주님이 말씀하셨지요. 『나를 한 시간도 기다리지 못하느냐?』 6천 년 동안 우리는 별로 변하지 않았기에 천국은 누군가를 보내 계속 우리에게 상기시킵니다.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오셔서 명확한 메시지를 남기셨어요. 그 말씀에 따라 살거나 노력이라도 하나요? 아니면 그 못들이 헛되게 그 신성한 육신을 뚫었나요? 저는 오늘 밤 바로 시작하자고 말합니다.   오늘 아침 저는 고통 속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몸이 비단으로 변했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역사하심을 느꼈고 신성한 영역을 떠나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사랑하는 주님에 대해 제가 언제나 느끼고 또 느껴온 바를 그냥 말하길 원하셨어요. 그분을 위해서일까요? 아니요, 우리를 위해서요. 그분을 통해 제 손은 치유하는 손이 됩니다. 아니면 육신에 불과하죠. 그분의 위대한 사랑 때문에 천사들이 모이고, 그들 깃털이 축복 속에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집니다. 자기 자신인 친구에 대해 무슨 말을 더하겠어요? 저 자신의 모든 것은 그분 안에 얽혀 있습니다. 그분은 저의 숨결이고 삶이고 사랑입니다. 제가 잠시 쓰러진다면 주님은 자신도 쓰러졌다가 다시 당당하게 일어섰다고 저를 일깨우십니다.   제가 눈을 감으면 늘 저를 바라보는 주님의 맑은 파란 눈이 있습니다. 그분이 제 숨결보다도 더 가깝고 제 손발보다 더 가까움을 압니다. 주님은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을 알리러 왔습니다. 예수님이 제 삶에 오시며 일어나기 시작했던 몇몇 작은 기적을 말하고 싶어요. 제게는 오래된 고물차가 있었는데 85달러에 샀었고 5년이나 탔어요. 기름을 넣어야 하는지 몰라서 기름을 넣은 적도 없지만 잘 달렸어요. 저는 이런 일들을 막 접했기에 그 힘을 쓰고 싶었지요. 그런 느낌 알지요? 그래서 말했어요. 『휘발유는 가득해. 휘발유는 가득해. 휘발유는 가득해. 휘발유는 가득해.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니 휘발유는 가득해』 그러니까 가득해졌어요. 몇 달간이나 가득했어요. 아주 좋았어요.   차를 움직이는데 돈이 하나도 안 들었어요. 정말 그렇게 되었죠. 하지만 결국 크신 분께서 제게 가르침을 주길 원했어요. 신을 이용하지 말고 아버지를 이용하지 말라. 아버지께서 너를 쓰시게 하라. 이해했나요? 아버지를 쓰는 것은 싸구려니 아버지가 주시게 하세요. 힐다 찰턴과 그녀의 가르침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다음을 방문하세요. hildacharlton.com
지혜의 말씀
2020-05-14   244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14

힐다 찰턴(채식인): 살아있는 성인들 - 예수님의 정원, 2부 중 1부

00:11:07

힐다 찰턴(채식인): 살아있는 성인들 - 예수님의 정원, 2부 중 1부

힐다 찰턴은 4살 때 부모와 함께 영국 런던에서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녀는 18살 때 현대 무용가로 공연하기 시작해 20년간 계속했습니다. 그 후엔 15년간 인도에서 지내며 동양의 신비주의와 명상을 연구했습니다. 힐다 찰턴은 대단히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뉴욕 시에서 그녀는 23년 이상 수천 명 구도자에게 진리와 용기 및 사랑의 삶에 대한 강좌를 열어 실용적인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힐다의 가르침은 자제와 베풂, 용서, 조건 없는 사랑과 신을 기억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힐다 찰턴의 저서 『살아있는 성인들』은 그녀가 뉴욕 시의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에서 했던 특별한 강좌 모음집입니다. 자기 삶의 일부였던 신성한 사람들과 성인들에 대해 사랑과 지혜 및 유머를 담아 말합니다. 이 책은 또한 진리와 용기, 사랑의 삶을 사는 방법에 대한 실용적 가르침을 포함합니다. 이제부터 『살아 있는 성인들 1장: 예수님의 정원』을 소개하겠습니다.   ♧『예수님은 다가올 시기에 대해 가르치려고 지구에 왔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말하고 준비시켜 우리에게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제게 그분은 요기 중 요기입니다. 때론 그분이 십자가에 매달려 한쪽으로 머리를 숙인 모습을 보면 그분이 요기 중 요기임을 잊어버립니다. 그분은 요기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가 물 위를 걸었음을 압니다. 힘을 가졌음을 압니다. 그분이 청년기에 티베트에 갔던 걸 압니다. 그분이 글래스톤베리를 방문해 그 해변을 걸었음을 압니다. 제게 그분의 모든 말씀은 지고의 진리이며 자유로 이끕니다. 제자에게 가르친 그분 뜻을 읽으면 그 말씀에 완전히 감탄합니다. 그 조언이 살아있다면 그것은 유효합니다. 마치 마법처럼 작용하니 놀랍고 흥미롭지요.   그것은 2천 년 전처럼 지금도 살아있고 작용합니다. 설교자들은 그분 말씀을 종종 지루하게 만듭니다. 오늘 밤은 지루하지 않길 바라며 제가 지루하다면 예수님의 용서를 빕니다. 오, 즐거운 푸른 빛이 제 책에 비치는 걸 봤어요. 멋지군요. 절 용서하신 것 같아요. 게다가 부모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강요합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사랑으로 읽으면 그분 말씀은 정말 희귀한 보석이 되어 삶을 수월하고 꽃들과 성공이 있는 초원으로 만듭니다.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 저는 라마 크리슈나와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 이렇게 세 분만 알았습니다. 니티야난다, 마하데바난다, 사이 바바 등 수많은 분은 만나지 못했죠. 비록 당시에 니티야난다께서 제 방에 나타나 제 호흡법을 도와주기도 하셨지만요.   니티야난다가 『나는 히말라야의 요기다. 그러니 그녀가 예수님의 사람이라면 나는 도울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제가 마하데바난다를 만났을 때도 그는 『당신 종교는 뭔가요?』 『세례를 받았나요?』라고 묻지도 않았어요. 예수님이 내려와 『너는 세례 받았느냐?』라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좋습니다. 당연히 그렇지요. 맙소사, 전 세례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어떤 것도 반대하지 않아요. 단지 사람들을 철길로 밀어 버리는 이 세상의 어두운 사악함만 빼고요. 그것은 반대합니다. 다른 것은 괜찮아요. 어떤 것이든 숭배하고 싶다면 그 방식대로 숭배하세요. 할 일을 하세요. 규칙에 따라 가고 싶다면 그것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안전하게 느끼게 해준다면 하세요.   행성의 존재들과 제가 언급한 모든 교사는 모두 한 분의 신을 위해 조화롭게 일합니다. 오직 여기 아래에서만 소그룹들로 나누어 여러 이름을 붙이고 분리하지요. 오늘 밤 여러분 마음에 약간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어떤 분리가 있다면 다 쓸어 버리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하늘을 바라보고 무한하고 절대적인 전능한 신 안에서 멀리 나아가고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묶이지 않음을 압시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회 안에 들어갈 수 있고 여러분은 이해합니다. 발리가 오늘 밤에 교회에 가고 싶었기에 일찍 왔습니다. 그것이 그녀를 묶을까요? 아니요, 더 확장시킵니다. 유대교 예배당에도 갈 수 있고 거기서 집처럼 편안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숭배하는 것은 유일신이 아닙니까? 이슬람 사원에 간 적이 있어요. 거기도 유일신이죠?   인도에서 이슬람교 성인을 만났습니다. 당시 봄베이의 타지마할 호텔에서 고전 무용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와서 제 춤을 봤어요. 당시 저는 유대교나 기독교는 이해해도 이슬람교가 무엇인지는 잘 몰랐어요. 이 위대한 성인은 하루 종일 봄베이 해변에 있는 게이트웨이 오브 인디아에 앉았다가 저녁에 다시 그의 사원으로 돌아갔어요. 저는 그와 같이 앉아 말했어요. 『무엇을 숭배하나요?』 그가 말했지요. 『나는 하나의 빛, 하나의 힘을 숭배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죠. 『나도 그걸 숭배하는데』 그래서 이슬람교와 일치하는 게 있었지요. 이것을 이해합니까? 그날 제 시야는 넓어졌고 다른 것을 받아들였어요. 그렇게 하니 자신이 더 커지고 나아진 걸 느꼈죠.   이 복된 분들에겐 어떤 분리도 없습니다. 그들이나 예수님께는 없죠. 진리를 살아가면 당신 신분이 무엇이든 당신은 예수님과 하나입니다. 그가 제게 누군지 물었을까요? 아니요, 그저 와서 사랑했죠. 『오, 사랑의 주님』이란 짧은 노래를 아나요? 동양에서는 치유사가 마을로 방문합니다. 그가 환자를 만지면 갑상선종이 줄고 내반족이 고쳐지지요. 보고 있으면 대단했어요. 우리 셋이 그를 보려고 그곳에 갔지요. 힌두교도와 여호와의 증인과 절대자를 숭배하는 저였죠. 그들이 그 노래를 불렀고 우리는 마치 세 명의 미친 자처럼 춤을 췄지요. 길을 걸어 내려가며 노래를 불렀어요. 『오, 사랑의 주님』 여기 그 노래를 들어본 분이 있나요? 같이 불러봐요.   오, 사랑의 주님 오, 사랑의 주님 오, 사랑의 주님 날 사랑해 주시네. 지금 무엇을 볼까? 성모 마리아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 우리는 노래하고 성모님은 아기를 흔들어 주시네.   힐다 찰턴과 그녀의 가르침에 대한 자세한 자료는 다음을 방문하세요. hildacharlton.com
지혜의 말씀
2020-05-13   271 조회수
지혜의 말씀
2020-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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