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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모델

목사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 (채식인): 평화를 사랑한 천재, 2부 중 1부

2020-08-02
진행 언어:English

에피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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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ST (m):‍ 살뤼 프랑스 북동부 알자스에서‍ 사용되는 알사티아어로‍ 『안녕하세요』입니다. 저는 클로드입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알자스 사람들은 온 우주에 자비와 조화를‍ 전하는 일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목사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채식인): 평화를 사랑한 천재』 2부 중 1부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그는 1949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는 제목과 함께 타임스지의‍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전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은 그를‍ 『인류의 천재』라고‍ 불렀죠.

그는 1952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사실 목사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생명의 경건함』이라는‍ 개인 철학을 펼쳤던 훌륭한 대학자였습니다.

채식인이자, 신학자 음악가, 작가, 선교사, 그리고 의사였던, 그는 어려운 사람을 돕고 평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데 그의 삶과 놀라운 능력을 바쳤습니다

 

목사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1875년 1월14일‍ 프랑스와 독일의 접경 지역인 알자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가족은 지성을 중시했고 친척 중 다수가 종교, 음악, 교육 등의 분야에서 학문적 성공을 거뒀습니다. 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루터교 목회자였고‍ 친가와 외가의 할아버지 두 분 다 재능 있는 오르간 연주자였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어린 시절 본인이‍ 다른 아이들보다 신분이 높고‍ 더 잘 산다는 사실을 일찍 깨달았습니다. 그는 형편이 어렵지만,‍ 매우 총명한 급우들과‍ 같은 마을 학교에 다닌 것을‍ 행운이라고 생각했고‍ 겸손함을 느꼈습니다.

 

9살 때는 스스로 3.2km를‍ 걸어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며‍ 계절의 변화를 통해,‍ 자연환경에 몰입할 수 있는‍ 홀로 걷는 여정을‍ 즐겼습니다. 어린 슈바이처 박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 알고 싶어 했고 겨우 8살 때 신약성서를 읽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부주의한 인간들로 인해‍ 생존하려 몸부림치고‍ 학대받는 무력한 동물들을‍ 본 그는 『살생하지 말라』라는 계명에 깊은 감동을 받았으며 밤이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Young Dr. Schweitzer:‍ 『오 천상의 아버지시여,‍ 숨쉬는 모든 존재를 보호하고 축복해주고 모든 악으로부터 보호해‍ 편히 쉬게 하소서』‍

 

HOST:‍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어린 나이에 피아노와 오르간을 시작해 즉흥 연주와 자신만의 노래 반주를 만드는 것에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교회에서 처음 연주했을 때가 겨우 9살이었습니다. 1885~1893년‍ 뮐하우스에서 중등 교육을‍ 받는 동안 그는‍ 오르간 거장 외젠 뮌치에게‍ 배웁니다.

그의 지도아래 10대의‍ 소년 슈바이처 박사는‍ 기술 향상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도록 영감을 받았고‍ 요한 세바스찬 바흐와 리하르트 바그너와 같은 위대한 음악가들의 작품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이렇게 행복하고 건강한‍ 젊음을 축복받는 것에 더없이 감사했고 그것을 당연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과 청춘의 추억』에서 다음처럼 썼습니다.

Dr. Albert Schweitzer(m):‍나의 행복한 감정‍ 깊은 곳에서‍ 우리 삶은 자기 혼자만의 것으로 다뤄서는 안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가 서서히 자라났다. 개인적 고통을 면한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줄이는 데‍ 도움을 요청받고 있음을‍ 스스로 느껴야 한다』‍

 

HOST:‍ 21살이 되자‍ 슈바이처 박사는‍ 30대까지 설교, 과학, 음악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이 분야에서 바라는 바를 성취하려‍ 노력하면서 한편으론‍ 타인에게 봉사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 다음 해에 그는‍ 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 스트라스부르에서‍ 신학, 철학, 음악이론 등 연구를 추진했습니다.

파리에서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재능있는 연주자에서 유명한 오르간 학자로 발전하는 데 도움을 준 유명한 오르간 연주자 겸‍ 작곡가 샤를 마리 비도르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슈바이처 박사처럼, 샤를 마리 비도르는 오르간을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영원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음악에 큰 존경을 표했으며 슈바이처 박사는 그의 음악을 『숭배 행위』‍라고 묘사했습니다. 두 사람은 평생 친구로 자랐습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연습을 계속했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콘서트 오르간‍ 연주자 중‍ 한 명이 되었고‍ 그의 오르간 연주 일부가‍ 녹음되었습니다. 자신의 음악적 재능으로 학업과 훗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자금을 벌 수 있었죠.

 

소중한 시청자 여러분‍ 잠시 쉬면서, 우리의 신성한‍ 목적을 되새기겠습니다.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에‍ 곧 돌아오겠습니다.

『목사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채식인): 평화를 사랑한 천재』 2부 중 1부에 돌아오신 걸 환영합니다.

VO(m):‍ 『인간 삶의 목적은 봉사이며 타인을 돕겠다는 의지와‍ 연민을 보여주는 것이다』‍~목사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

 

HOST:‍ 1893년‍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스트라스부르 카이저 빌헬름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스트라스부르 대학에서 1899년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고 1900년 신학 석사를 취득했습니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성 니콜라스 교회 전도사로‍ 일하기 시작하여‍ 그 후 성 토마스‍ 신학 대학에서‍ 여러 고위 행정직을 역임했습니다.

1906년 『역사적 예수의 탐구』‍라는 책을 출간하여‍ 그는 존경받는 신학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31년 『사도 바울의‍ 신비주의』라는‍ 책 출판으로‍ 그의 위상과 명성은‍ 더 높아졌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오르간 연주자, 작가, 대학교수, 목사로서 열심히 일하면서 학업을 보충하였습니다.

 

그가 이 기간동안‍ 펴낸‍ 팸플릿과 책에는 요한 세바스찬 바흐, 오르간과 오르간 제작,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배경 등 자신의 관심사가 반영되었습니다. 이런 주제의 밑바탕에는‍ 그가 『진리를 향한 영원한 분투』라고 부르는 공통된 맥락이 깔려 있습니다.

1904년에 목사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가봉에서 나병 수면병 등‍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긴급한‍ 의학적 도움을 호소하는‍ 파리 선교협회의 글을‍ 읽었습니다.

 

1905년 30세의 목사‍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아프리카의 빈민을 돕는 것으로 타인을 섬기는데 인생을‍ 받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는 그 대륙에서 외국인과‍ 식민지 개척자들이 저지른‍ 병폐를 보상하고 더 나은 본보기가 되길‍ 바랬습니다. 예전에 그가 말했습니다.

VO(m):‍타인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HOST:‍ 준비를 위해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의대에 입학하여‍ 열대 의학과 수술을 전공하였습니다. 1913년 그는 의학 학위를 취득합니다. 1912년 6월 헬레네 브레슬라우와 결혼한 후‍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광범위하게 퍼진 말라리아, 이질, 수면병, 상피병, 나병 등으로 고통받는 람바레네 지역‍ 파리 선교 협회 임무에‍ 내과 의사로 지원합니다.

1913년 3월 26일‍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와‍ 이 임무를 돕기 위해, 공인 간호사가 된 헬레네 슈바이처는‍ 지금의 가봉에 속하는‍ 람바레네 지역에 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출발합니다.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병원을 전형적인 아프리카‍ 마을처럼 건설하고‍ 운영하며, 주민의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아프리카 문화를 그들의 기술에 결합시켰습니다.

 

환자에게 큰 신뢰와 애정을‍ 얻은 그를 사람들은‍ 『의사와 치료사』라는‍ 뜻의 『오강가』로‍ 존경을 담아 불렀습니다. 처음 9개월 동안 약 2천 명 환자가 검진을‍ 받으러 왔고 그중에는 그를 만나러 여러 날 동안 수천 킬로미터를 여행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목사 슈바이처 박사는‍ 유럽 정치 상황으로 병원의 모든 일을 중단하게‍ 될 때까지 오랫동안 열심히 일했습니다. 1918년 그와 아내는 알자스에 정착하기 위해 돌아왔고 44번째 생일에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의‍ 딸 레나가 태어났습니다.

 

그 후 6년 동안,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는‍ 계속해서‍ 의학 수업을 듣고 몇 권의 책을 쓰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에서 병원을 재개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고자‍ 예전 교회로 돌아가‍ 설교하고‍ 강의를 하고‍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여기에 더해,‍ 전 세계 사람들이 병원 물품을 위한‍ 모금에 동참했습니다. 프로그램을 마칠 때입니다. 람바레네에서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가‍ 고양이와 함께‍ 페달 피아노로 바흐의 곡을‍ 연습하는 이 귀중한‍ 녹음을 감상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시청자 여러분‍ 오늘 저희와 함께 해주셔서 아주 기뻤습니다.

8월 9일 금요일 『목사 알버트 슈바이처 박사(채식인): 평화를‍ 사랑한 천재』 2부에서 다시 뵙길 바랍니다.

 

다음은 주목할 뉴스와 『사랑의 선물:‍ 칭하이 무상사(비건)의 간단하고 영양 많은 요리~‍어울락(베트남) 사우어 스프, 비건 햄과 흰 가지』가 이곳 수프림 마스터‍ 텔레비전에서‍ 방영됩니다.

자애로운 태양이 여러분께‍ 영원한 빛과 행복을‍ 쏟아붓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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