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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횃불을 드는 사람이 돼라, 5부 중 1부

2020-06-22
진행 언어:English
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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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영혼과 신의 모든 작은 분신은 서로 다른 길을 걷기로 선택합니다. 신의 다른 모습들을 체험하기 위해서요. 온 인류나 모든 존재의 모든 체험은 신의 전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말했죠.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모두가 우리이니까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나를 스승이라 하지만 여러분 모두 스승이죠. 여러분은 잊은 것뿐이죠. 우리가 하나 되고 우리 자신을 포함한 우주가 하나라는 걸 기억하게 되면 우리가 신과 하나이며 두루 편재한 지성과 하나라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을 잊게 되면 모든 것을 잊게 되지요. 그리고는 기도나 경전들, 요가나 명상 같은 것을 통해서 생각해내려 합니다. 이 모두가 좋아요. 우리에게 좋은 거지요. 언젠가는 진실로 우리 모두 스승이라는 것을 기억할 겁니다. 이 방안이나 어느 곳이든 스승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소 부재한 스승과 분리될 수 없으니까요. 우린 그 무소 부재함 안에 있고, 그것과 하나이며, 우리는 그것 하나로 만들어졌어요. 우리가 진리, 지혜, 신, 여신, 부처라고 부르는 신의 본질과 가장 위대한 것 외에 우리 존재를 만든 것은 없어요. 무엇이라 칭하든 우주의 가장 위대한 이 존재는 우리와, 우리 모두와 하나입니다.

그래서 죽을 때 우리 자신이나 육신이라는 것이 땅바닥이나 어디든 누워서 움직이지 않지요. 왜냐하면 모든 움직임과 모든 행동의 본질이 죽을 때 육체적인 도구를 떠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죠. 어쩌면 우리가 신이라고 부르고, 실제로 우리와 하나인 이 위대한 존재의 무한함과 광대함을 더 체험해 보려고 또 다른 도구를 찾겠지요. 일단 무소 부재한 지성과 무소 부재한 사랑과 하나 됨을 발견하면 이 깨달음을 신의 깨달음 또는 자아실현 또는 성불이라고 합니다.

각 나라마다 이 지성과 이 지혜와 이 최고의 사랑을 칭하는 말이 다르지요. 언어가 서로 다르니까요. 아니하면 자신을 포함해 만물을 감싸는 하나, 이 하나 됨만이 있을 겁니다. 우린 이 하나 됨과 절대 분리되지 않아요. 분리되려 해도요. 이 하나됨과 분리를 느끼는 유일한 이유는 이 일치를 잊기로 선택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린 망각을 통해서 이 위대함을 다시 체험하고 우리 자신을 다시 창조할 수 있으며 우리 자신이자 가장 위대한 자아인 신과 하나 되는 천상의 기쁨을 기억할 수 있지요.

예를 들면 많은 사람이 언제나 묻지요. 『죽으면 무슨 일이 생기나요?』 난 항상 말합니다. 『난 아직 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주 깊은 기도나 묵상 중에 죽는 느낌을 체험할 수 있어요. 아주 깊이 기도에 몰두하면 자신을 포함해서 주위의 모든 것을 잊게 되고 온갖 근심들이 사라지게 되지요. 이때가 바로 인도의 요가 수행자들이 말하는 『삼매』지요. 이 삼매에 들 때 신과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죽을 때와 거의 같지요. 그래서 성경에 이런 말이 있어요. 『죽는 것을 배우면 살게 될 것이다』 한 성자도 말했지요. 『나는 매일 죽는다』 『누구든 영혼을 위해 육신을 버리면 신을 찾을 것이다』 등등.

어떻게 육신을 잊거나 버릴까요? 우린 매일 살아가고, 생존하는 문제들을 수없이 갖고 있지요. 우리 주변에서 보는 모든 사소한 일과 살면서 부딪치는 모든 것이 늘 우리가 육체적인 존재이며 그저 죽을 수밖에 없고 약하고 힘없고 운명 앞에서 무력한 인간임을 일깨웁니다. 어떻게 이걸 잊을까요? 우린 가능해요! 수행하면 할 수 있어요. 방법을 알면 됩니다. 아주 간단해요. 우리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우린 6살 아이부터 있고 그보다 더 어린 5살도 있는데 그들은 벌써 신과 하나 되는 체험을 했죠. 육신을 버리고 성령과 일체감을 느끼는 현상도 체험하고, 살아있는 동안 천국을 가보는 체험도 합니다. 그건 아름다운 여러분 나라를 방문하러 내가 아프리카에 왔다가 내일이나 그다음 날 다른 나라로 가거나 내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아요. 그처럼 간단해요.

천국에 갔다가 다시 이 세상에 돌아올 수 있죠. 육신이 아닌 우리 자신의 본질로요. 그것을 영혼이나 정신이라고 하며 언제나 신과 하나지요. 이 몸은 단지 한 초점으로서 영혼이 모든 주의력을 그곳에 집중해서 자신이 해보고 싶은 어떤 지상의 체험을 쌓기 위한 것입니다. 그가 일시적으로- 영혼이 그나 그녀라면 호칭을 붙여야 하니까요. 그녀나 그가 이 물질계에서 뭔가 체험하고 싶다면 그 영혼이나 그 위대한 신의 일부는 어떤 초점에 집중해야 하며 몰두해서 집중하면 자신이 신과 하나임을 완전히 잊을 수 있죠. 바로 그 순간 우리가 태어나고, 물질계에 태어나 몸을 갖게 됐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나 그 신 의식의 일부가 집중하기로 선택한 몸이 어떤 몸이든 이 집중 지점에 계속 몰두하면 그것이 그다, 그녀다, 인간이다, 또는 무엇이라고 말하게 되는 거죠. 사실 그 영혼의 일부 또는 개별 영혼이라는 건 전체 신 의식을 절대로 떠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린 정말로 태어나지도 않고 절대 죽지도 않지요. 그러나 우리는 신과 자신의 합일 전부를 완전히 잊고 이 육체적인 존재에만 집중하게 택할 수 있어요. 그러면 신이 온 사방 어느 곳에나 있지만 전혀 신성을 체험하지 못하지요. 하지만 깨어나고 기억하기로 결정을 한다면 할 수 있어요. 잠시 우리의 관심을 버리고 얼마간 이 육신에 집중하지 말고 합일에 다시 집중하게 되면 신을 찾을 수 있어요. 우리가 신을 절대로 떠나지 않았으며 신과 하나이며 항상 분리되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의 비밀이지요. 우리 자신이, 우리 자신의 의식이 항상 선택하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인간이 되기로 선택하면 인간의 몸에 집중해서 인생을 경험해 보는 거지요. 모든 슬픔과 고통, 행복, 육체의 모험들, 즐거움, 고통을 경험합니다. 육체적인 체험을 충분히 했다고 느끼는 그 순간 우린 다른 체험을 하고 싶어 하지요. 그럼 또 다른 선택을 해요. 천신이 되는 걸 선택하거나 꽃이 되는 체험을 선택할 수도 있어요. 그것도 가능해요! 그래서 다른 등급의 존재로 환생하는 윤회 이론이 생겨난 거예요. 하지만 사실 우린 전혀 어디에도 가지 않지요.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고 그저 영원히 우주의 생명력 안에서 떠다니며 영원히 신성 안에 있지만 다른 집중 지점을 체험하는 겁니다. 우리 자신의 즐거움과 재미를 위해서요.

그러나 우리가 육신에 머무는 동안 때로는 자신의 지혜를 잊어버리게 되지요. 따라서 이곳에 오기 전에 했던 선택도 잊어버리지요. 그래서 우리가 했던 선택이 아픔과 고통을 주는 겁니다. 그러면 불평을 하죠. 불평을 심하게 합니다. 우린 고통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육체는 고통을 싫어하고 마음은 압박감을 싫어하지요. 그러나 영혼은 그것을 체험하고 싶어 해요. 압박감을 체험하게 되면 신 의식 안에 있는 자유를 다시 감사하게 됩니다. 고통을 선택하게 되면 다시 한번 영원한 기쁨 속에 들어갔을 때 천 배나 즐길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겁니다. 신과 우리 자신을 더 알게 되니까요.

옛날 어떤 나라의 왕처럼 말입니다. 때로는 왕은 자신을 평민으로 변장하고 사람들 사이를 다닙니다. 진짜 백성의 신분이 어떤지 알아보려고요. 그런 다음 돌아오면 자신의 지위에 더욱 감사하게 되지요. 안락한 궁전과 시중드는 모든 하인들과 자신이 갖춘 모든 힘을요. 자신을 평민으로 변장했을 때는 온갖 어려움과 온갖 평범함을 겪어야 했지요. 그의 모든 백성들처럼요. 그는 자신이 왕임을 밝힐 수가 없었어요. 실제로 자신의 신분을 완전히 감춰야만 했지요. 그래야 정말로 자기 나라 백성과 동화되어서 그들의 일상생활이 어떤지 체험할 수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우리는 한때 신과 하나였고 그때는 의식하고 있었죠. 우리는 신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하나 지금은 의식적으로 그것을 기억하지 못해요. 그래서 이 물질적인 삶의 고통도 충분히 겪어보고 세속의 체험도 해보았더니 따분해진 거지요. 여기에는 더는 즐길 것이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으며 신이 창조한 이 광대한 우주에 체험해야 할 것이 뭐가 또 있는지 알고 싶어 하지요. 이때가 바로 이런 질문을 하고 이렇게 호기심을 갖는 때입니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을 체험할 때입니다. 준비가 된 겁니다! 깨달을 준비가 된 거죠. 이 모든 세월 동안 여러 다른 인간이 되었던 겁니다. 때로는 우리가 한 집중점이나 한 인간 존재에만 집중하다 보면 물질적 즐거움이나 물질적 모험을 충분히 했다고 느끼지 못해요. 그러면 다시 또 다른 인간이라는 다른 존재에 집중하지요. 그러면서 지칠 때까지 계속 더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준비가 된 사람은 신의 빛과 신과의 합일과 깨달음을 체험할 수 있지요. 그처럼 아주 간단해요.

여러분의 선택이죠. 잊기로 선택했다가 이제는 기억하기로 선택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다시 기억하기로 했다고 생각한다면 물론 내가 여러분을 도울 겁니다. 신이 나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했고 명령했기 때문이죠. 아마 언젠가는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나면 신이 여러분에게도 똑같이 말할 겁니다. 『가거라, 내 아들아! 가거라, 내 딸아! 내 자녀들이나 나에게 봉사하라』

우리는 결코 신과 분리된 게 아니니까요. 그걸 기억하세요. 설사 기억하지 못해도 나를 믿으세요. 우리는 신 의식 안이 아니고는 어디에도 갈 곳이 없어요. 신의 집 말고는 지금 당장 어디 다른 곳이 없어요. 모든 곳에서 그는 이 우주의 모든 존재를 감싸고 있죠. 모든 꽃과 태양, 달과 별, 행성과 은하계는 모두 신 안에 있어요. 아무것도 신성을 벗어나지 않아요.

깨어있는 영혼엔 지옥이란 없어요. 단지 영원의 과정에서 그가 거쳐야만 하는 일시적인 통과 경험인 거지요. 왜냐하면 성장하고 행복을 다시 이해하기 위해서 고통이라는 체험을 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지요. 모든 영혼과 신의 모든 작은 분신은 서로 다른 길을 걷기로 선택합니다. 신의 다른 모습들을 체험하기 위해서요. 온 인류나 모든 존재의 모든 체험은 신의 전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말했죠.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모두가 우리이니까요. 그들은 그 역할만 하기로 택한 거지요. 원수라는 건 없어요. 그저 우리지요. 인생을 더 풍요롭고 더욱 다양하며 더욱더 다르고 다채롭게 하기 위한 신의 다른 집중점이요, 마치 신이 우리를 다른 색깔로 만들어서 서로 즐길 수 있듯이요. 나는 노란 옥수수 플레이크처럼 보이고 또 여러분은 초콜릿처럼 보여요. 그는 아이싱처럼 보여요. 크리스마스 아이싱이죠.

신은 다채롭거든요! 그가 온갖 꽃들을 서로 다른 색깔로 만들어요. 과일도요. 똑같은 흙에서 수없이 다양한 과일들과 다양한 꽃들이 나오지요. 모두 다 색깔이 달라요. 아프리카 사람은 항상 화려한 색깔의 옷을 골라 입지요. 왜냐하면 내면으로 신과 매우 가깝게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아주 행복하지요! 그래서 신을 찾거나 우리의 진아를 찾는 것이 정말로 신비하거나 어려울 게 없어요. 우리는 신이자 신의 본질, 신과 하나, 신의 아이들, 자녀, 신의 불꽃, 신의 일부가 아닌 적이 결코 없었으니까요. 마치 바닷속 물고기와 같아요. 그는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살며 죽을 때 다시 바다가 됩니다. 그런 겁니다. 그래서 우린 절대 어디로 달아나지 않죠.

지금 우리의 문제는 우리 생각을 바꿔야 하는 겁니다. 우린 바꿔야 해요. 우리에겐 너무 많은 죄책감과 모든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우린 성공하면 양심의 가책을 받아요. 우리가 부자면 사람들이 죄인처럼 느끼게 만들죠. 신이 우리에게 어떤 부나 성공적인 사업을 준다면 사람들이 죄인처럼 느끼게 해요. 예쁜 부인이 있다면 때론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만들죠. 그들은 곁에 와서 물어요. 『어떻게 이런 미녀를 알게 되었나요?』 또는 그녀에게 묻겠죠. 『그의 어떤 점이 좋아요? 그는 못생겼잖아요!』 이런 식이에요. 참견할 일이 아닌데도 불쾌하게 만듭니다. 돈이 많아도 그들은 죄책감을 느끼게 만듭니다. 정치나 사업에서 성공해도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어요. 온 세상이 아주 많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우린 그렇게 교육받았으니까요. 이런 교리는 절대 옳지 않죠.

그래서 예수와 모세가 우릴 자유롭게 해주려고 와야 했어요. 그의 희생만이 아니라 신은 모든 사랑임을 가르치고 말해요. 『두드리라, 그럼 열릴 것이니라. 구하라, 그럼 주어질 것이니라』 하지만 어딜 두드리죠? 우리는 더는 두드릴 수조차 없어요. 우린 너무 약합니다! 이런 복수심에 불타는 신에게 받는 죄책감과 두려움을 지고 있죠. 복수하는 신 같은 건 없습니다. 복수심에 불탄다면 신은 우리와 같아요. 여러분과 나, 전쟁의 신. 『너희는 내게 좋은 일을 하라 아니면...』 이건 신이 아니에요! 그런 신을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나요? 그럼 우린 그렇게 속 좁은 존재를 숭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정말 사람이고, 그런 신이 있다면 굳이 신을 경배할 필요 없어요. 왜냐하면 그건 그냥 힘을 남용하는 사람의 하나일 뿐이니까요.

이 행성에서도요.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에게 아이가 있거나 부인과 남편이 있다면 때론 여러분의 부인이 실수하고 여러분의 남편이 약간 빗나가지만 여전히 그를 용서하고 그를 안아줍니다. 『좋아요, 용서할게요. 다시 그러진 마세요』 또는 아이들이 때론 고집을 피워서 많은 문제를 줍니다. 여러분 말을 안 듣고 두통을 일으키죠. 그래도 그들을 용서하고 아이를 사랑하며 부모가 줄 수 있는 최상의 사랑을 줍니다. 돈도 주고 모든 것을 희생해요. 그러니 어떻게 신이, 가장 위대한 아버지, 또는 온 우주의 어머니가 복수심에 불타고 여러분이 인간이며 더 나은 걸 모르고 가끔 실수한다는 이유로 여러분을 지옥에 빠뜨릴 수 있겠어요? 그러니 이런 두려움은 대대손손 우리에게 가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너무 약하여 기도에 답하시는 신이 있다는 걸 믿지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진심으로 기도하지 않고 우리 기도가 응답을 받을 거란 확신을 갖지 못해요.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죠. 『두드리면 열릴 것이요, 구하면 얻을 것이다』 정말 그렇습니다. 신은 정말 그래요. 여러분이 뭘 하든 신은 여러분의 기도에 항상 응답할 겁니다. 그냥 들어야 해요. 난 어떻게 신을 듣는지 알려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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