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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마하비라의 삶: 고샬락을 구하다, 3부 중 2부

2020-04-10
Lecture Language:English,Mandarin Chinese (中文)
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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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비구니는…‍ 다시 내 달력을 펼쳐도‍ 괜찮나요, 어때요?‍ (좋아요) 그럼 됐어요. 이미 했던 이야기인데‍ 다시 예를 들어볼게요. 미아오리에‍ 어떤 비구니가 있었어요. 오랜 세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어요. 일요일이 되면 사람들을‍ 가득 태운 버스가 왔어요. 그녀를 숭배하거나‍ 그녀의 축복을‍ 받으러 온 거였죠. 그녀는 말도 안 했고‍ 설법도 안 했어요. 사람들에게 몸짓으로만‍ 아미타불을‍ 외라고 했어요. 그뿐이었죠. 내가 갔을 때는‍ 그렇게만 했어요. 하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러겠어요?‍ 그녀처럼 호흡식가가‍ 되는 법을 물은 사람은‍ 나뿐이었어요.

그 비구니는 매우 기뻐했죠. 다른 사람들은‍ 그게 불가능하다고 여겨‍ 물을 생각도 안 했거든요. 그 비구니의 가르침에‍ 따라, 채식하는 것만도‍ 어려운데 물만 먹고‍ 호흡으로만 사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겠죠. 그 비구니는‍ 한 단계씩 올라가면‍ 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나도 정말 할 수 있었죠. 그 당시엔‍ 음식을 보면 음식이‍ 청정하지 않다고 느꼈죠. 그래서 먹기 힘들었어요. 그때는 내가 호흡식가가‍ 될 수 있을 줄 몰랐어요. 그런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러다가 아무것도‍ 먹을 수 없게 되었죠. 먹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바로 끊었죠. 누가 날 자극하는‍ 바람에 끊었어요. 주지스님이 이랬거든요. 『하루에 한 끼만 먹지만‍ 세 끼를 합친 양만큼‍ 먹는구나』‍ 난 『그런가요? 스님은‍ 여섯 끼 정도고요?』 했죠. 그래서 개의치 않았어요. 그래서 그날부터‍ 먹지 않았어요. 아무것도 안 먹었죠.

다들 겁을 냈어요. 난 계속 일했거든요. 경내를 청소하고‍ 사찰에서 해야 할 일은‍ 다 했으니까요. 난 혼자였어요. 그러자 그들은 내가‍ 죽을까 봐 걱정하며‍ 계속 물었어요. 『먹지 않으면서도‍ 계속 일하는군요』‍ 난 『그래요. 안 먹고 싶으면 안 먹고‍ 먹고 싶으면 먹어요』 했죠. 그런데 그들이 항상‍ 날 지켜보고 있어서‍ 더는 견딜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전처럼 먹었어요. 그때는 아주 간단했죠. 뭘 준비하지도 않았고‍ 21일 기간을‍ 거치지도 않았으며‍ 그냥 그렇게‍ 바로 그날부터 끊었죠!‍ 아무렇지도 않았고‍ 뭔가 허전하다거나‍ 음식을 먹고 싶다거나‍ 하지 않았어요. 먹고 싶었다면‍ 끔찍했을 텐데요. 아니었죠. 욕구가 없었죠.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가는 게 수월했어요. 난 『와, 이건 식은 죽‍ 먹기네』라고 생각했죠.

그때‍ 난 제자가 없었고‍ 하고 싶은 건 다 했고‍ 삶이 더 단순했어요. 세상 근심도 없고‍ 상관할 게 없었죠. 원하는 건 다 실현됐어요. 많이 원했던 건 아니고‍ 소소한 일용품들이었죠. 이를 테면‍ 어떤 게 없으면‍ 이렇게 말했죠. 『있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 그냥 생겼어요. 그냥 그런 식이었죠. 누가 보고 싶을 때는‍ 먼 곳에 있거나‍ 다른 나라나 유럽 등‍ 수천 마일 떨어진‍ 곳에 있더라도‍ 그들이 날 보러 왔어요. 생각만 하면‍ 매번 이뤄졌어요. 하지만 지금은 빌고‍ 간청해도 이뤄지는지‍ 어떤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개의치도 않고‍ 뭘 바라지도 않아요. 일어나면 일어나는 거죠. 그 당시 난 모든 걸‍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안 했어요. 그냥 아주 수월했죠. 사는 게 수월했어요. 먹고 싶지 않으면‍ 그냥 안 먹었어요. 상상이 되나요?‍ 여러분도 해 봐요. 21일 후에도‍ 호흡식을 할 순 없죠. 음식을 먹으면‍ 서서히 돌아오겠지만‍ 그렇게 쉽진 않아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에겐 참 쉬웠어요. 그게 이상해요. 전에는 내게‍ 문제가 안 됐죠. 내가 원하는 건‍ 바로 이뤄지곤 했거든요.

요즘엔 아마‍ 2천 년 정도는 기다려야‍ 뭔가 일어나겠지요. 명상도 많이 하고‍ 안거도 많이 해야‍ 서서히 이뤄질 거예요. 전처럼 쉽지 않아요. 하지만 다른 점이 있죠. 그때는‍ 내 삶이 수월했을 뿐‍ 세상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지금은 내 삶이‍ 그렇게 힘들지도 않고‍ 전처럼 그렇게‍ 수월하지도 않아요. 전에는 내 삶이‍ 동화 같았어요. 뭘 생각하면 다 이뤄졌죠. 소원을 빌지도 않았어요. 그냥 생각이 스쳐만 가도‍ 실현되곤 했어요. 물론 나쁜 생각은‍ 안 했어요. 다행이었죠!‍ 안 그러면 그것도‍ 쉽사리 실현되었겠죠. 괜찮아요.

내가 왜 또 달력을‍ 계속하고 있죠?‍ 그만해야죠. 호흡식을 해 봤나요?‍ 대다수‍ 몇몇 사람은 해 봤죠?‍ 쉬워요? 네? 아니군요. 대부분 절레절레하죠. 네, 나도 알아요. 그래서 먹지 않고‍ 살기는 참 어렵다는‍ 얘기를 많이 들은 터라‍ 난 뉴욕서 머물던 때를‍ 감사하게 여겼어요. 뉴욕에서, 절에서‍ 살 때요. 하지만‍ 뉴욕은 고기 먹는‍ 사람들로 가득하죠. 온갖 사람들로요. 대만(포모사)인과‍ 중국인들이‍ 절에 왔지만‍ 난 식욕이‍ 전혀 없었어요. 그리고 단식이‍ 따분해지자‍ 다시 먹으려 했어요. 다들 계속 날‍ 쳐다보면서 캐묻고‍ 뒤에서 수군거렸거든요. 그래서 그럴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죠. 시장하거나‍ 뭘 먹고 싶진 않았어요.

글쎄요. 단식을 할 때처럼 다시‍ 먹는 것도 자연스러웠죠. 처음엔 마른 풀처럼‍ 아무 맛이 없었어요. 여러 날이 지난 뒤에야‍ 서서히 익숙해져서‍ 맛을 느꼈어요. 맛있는 건 없었지만요. 하지만 안 먹는 것도‍ 이로움이 있죠. 내게만요. 삶이 수월해지죠. 하지만 먹으면‍ 많은 이에게 이로워요. 많은 사람과 많은‍ 인연을 맺으니까요. 음식은 사람들이 일하는‍ 가장 큰 이유죠. 모두 음식 때문에‍ 일하잖아요. 식품을 생산하고, 식물을 심고 가공하고‍ 수송하고 저장하고‍ 팔고 사고‍ 조리하고 씻고…‍ 일이 많죠. 그러니 이 세상에서‍ 음식을 한 입만 먹어도‍ 아주 많은 사람과‍ 많은 인연을 맺게 돼요. 그래서 명상으로 사람들의‍ 친절에 보답해야 해요. 돈만 낸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물론 그것도 좋아요. 하지만 돈을 지불한다고‍ 업이 다 사라지진 않아요. 그렇지 않아요.

다시 인도로 돌아갑시다. 이제 마하비라의 제자, 친구 혹은 동행자는‍ 점점 더 가까이 가서‍ 고행승의 얼굴을 봤어요. 그때 『그는 그 은둔자가‍ 기이한 속죄 행위를‍ 하느라 분주한 걸 봤다』‍ 인도에서는 속죄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어요. 그건 알죠?‍ 내가 여러 번 말해줬죠. 누구는 남자의 상징물에‍ 물체들을 매달고 얼마나‍ 강인한지 봅니다. 또 누구는 못 침대에서‍ 자고요. 또 한여름 뙤약볕에서‍ 주변에 모닥불을‍ 피우기도 합니다. 또 한 다리로만 계속‍ 오랫동안 서 있기도 하죠. 안 먹는 사람도 있어요. 아마 가끔 한 번씩 먹겠죠. 하루에 한 끼만 먹거나‍ 소량만 먹거나‍ 누가 먹여줄 때만‍ 먹는 이가 있어요. 스스로 그런 온갖 고행을‍ 하면 해탈하거나‍ 신을 볼 수 있다고‍ 믿는 것이죠. 옷을 안 입는 이도 있죠. 그들은 모든 걸 완전히‍ 버려요. 여자도 그래요. 여자 고행승도‍ 아무것도 안 걸쳐요. 업을 씻을 수 있다 해도‍ 대만(포모사)에선‍ 그러지 말아요 경찰이‍ 여러분을 치울 거예요. 업이 씻어질지는 확실치‍ 않아도 경찰이 여러분을‍ 치울 거라는 건 확실해요.

대만(포모사)에선‍ 인도의 남녀 출가승처럼‍ 탁발을 할 수도 없어요. 특별한 행사에서만‍ 그렇게 할 수 있죠. 일 년에 한 차례, 남녀 출가자들의‍ 수계식을 하죠. 출가승이 되고 싶으면‍ 신청을 하죠. 그러면‍ 삭발식 같은 걸 해요. 출가의례죠. 아마 두 달은 걸리죠?‍ 잊었네요. 정식으로 출가를‍ 하는 데 얼마나 걸리죠?‍ 수계 전에 몇 달 동안‍ 안거를 해야 하죠?‍ 두 달요?‍ (한 달 내지‍ 두 달인데요. 안거 기간은‍ 서로 다릅니다)‍ 때에 따라 한두 달이죠. 그러고 나서‍ 출가 의식이 끝나면‍ 탁발을 할 수 있어요. 상징적으로‍ 그때 한 번만이죠. 그런 뒤 어떤 절에‍ 들어가서 살거나‍ 홀로 기거하면서‍ 수행을 해요. 탁발은 안 나가요. 인도에선 할 수 있죠. 그렇다고 사람들이‍ 시주를 하는 건 아녜요. 꼭 그렇진 않아요. 내가 만난 어떤 승려는‍ 시주를 못 받아서 두 주간‍ 아무것도 먹지 못했어요. 그래서 뭔가를‍ 팔아야 했는데‍ 사는 사람도 거의 없었죠. 네, 그래서 지금…‍ 그 고행승은 기이한‍ 속죄 행위를 하고 있었죠.

『그는 해를 향해서‍ 선 채 머리는 숙이고‍ 두 팔은 위로 올렸다』 네, 상상할 수 있겠죠. 각자‍ 상상하는 건 다르겠지만요. 그런데 머리는 숙였어요. 『그는 해를‍ 향해서 선 채‍ 머리는 숙이고‍ 팔은, 두 팔은 위로 올렸다. 기다랗게 땋은 머리가‍ 땅바닥에 닿아 있었다. 마치 고령의‍ 반얀나무 뿌리 같았다』‍ 『햇빛의 열기 때문에‍ 몇몇 벌레가‍ 지저분한 머리에서‍ 떨어져 꿈틀대고 있자‍ 그는 자비심으로‍ 그 벌레들을 집어서‍ 다시 빽빽한 머리카락‍ 속에 넣어주었다』

오, 맙소사! 『고샬락은‍ 그 기이한 행위를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하고‍ 농담을 던졌다. 「벌레집이로군!」』‍ 고행승을 가리켜‍ 「벌레집」이라고 했죠. 이건 모독이에요. 이런저런 경어를‍ 쓰지 않고‍ 「벌레집」이라 했어요. 세상에.‍ 『「지금 뭘 하는 거요?」‍ 고샬락이 물었다. 「벌레를 모아 놓는‍ 행위를 속죄라고‍ 하는 거요?」‍ 그 은둔자는 처음에는‍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고샬락이‍ 심한 발언을 멈추지 않자‍ 은둔자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고샬락을 보며 말했다. 「사악한 인간아!‍ 나는 바이샤얀 타파스이며‍ 너처럼 무지한 바보는‍ 가만두지 않는다」』‍ 그는 화가 잔뜩 났어요. 『고샬락은 정신을 못‍ 차리고 상대를 경멸하는‍ 발언을 하며 모욕적으로』‍ 더 했군요. 『웃었다. 은둔자는 몇 걸음‍ 물러나더니 잔뜩‍ 분노하여 입에서 불을‍ 뿜어냈다』

조심해요! 난 불 같은 건 없어요. 하지만 조심해요. 여러분도 못 막고‍ 나도 못 막는‍ 지옥의 불이 있으니까요. 고행승은 뒤로 물러나‍ 입에서 불을 뿜어냈어요. 알다시피‍ 속죄를 많이 했으니‍ 당연히 그런‍ 신통력이 있을 테죠. 부처의 제자들 역시‍ 다양한 신통력이 있었죠. 좋든 아니든 있었어요. 그래서 때론‍ 공중을 날 수 있었고‍ 상체에서는 물이 뿜어져‍ 나오고 하체에서는‍ 불이 뿜어져 나왔죠. 예를 들면 그래요. 아니면 바위를 통과하고‍ 벽면을 통과하고‍ 닫힌 문을 통과하고‍ 하늘을 날고‍ 허공에서 불을 만들고‍ 물 위를 걸었어요. 그런 게 주된‍ 신통력이었어요.

나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난 안 해요. 못 하죠. 그런 건 허용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런 신통은 가능해요. 다른 업의 영향을‍ 안 받는다면‍ 스승이 되어 자신에게‍ 적합한 온갖 신통력을‍ 가질 수 있어요. 그럼 편리하죠. 그런 힘은 아스트랄계‍ 힘이 아니라서‍ 사용할 수 있어요. 부처의 제자들처럼요. 석가모니불의 제자요. 어떤 제자는 거지였는데‍ 얼마간 수행을 한 뒤에는‍ 바위를 통과할‍ 정도가 됐어요. 바위나 장애물을‍ 걸어서 통과했죠. 그러면 아주 편리하죠.

여러분이 스승이라면‍ 힘들어요, 못 하죠. 모든 걸 포기하겠다고‍ 서약하기에‍ 모든 걸 잃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죠. 그런 다음 다시‍ 쌓을 수도 있지만‍ 제자가 많아지면‍ 또 계속 잃게 돼요. 모든 걸 잃을 수도 있죠. 상관없어요. 다만‍ 스승이 되고 싶고‍ 많은 제자를 거두어‍ 유명해지고 싶다면‍ 재고해 보란 거예요. 세상 사람들을 가르쳐‍ 변화시키는 건 어려워요. 사람들이 말을 듣고‍ 박수를 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해를 해도‍ 머리로만 이해할 뿐‍ 깊은 이해, 깨달음은 없죠. 그러니 그들의 마음과‍ 생활방식을 바꾸긴 힘들죠. 그래서 대가가 커요. 그들이 여러분 제자이고‍ 여러분이 받아줬다면‍ 그들이 무엇을 하건‍ 여러분이 도와줘야 해요.

『이 신통력은』‍ 입에서 불을 뿜는 신통을‍ 일컫는 용어가 있어요. 『테졸레쉬아라는 것으로‍ 혹독한 오랜 속죄에서‍ 얻은 것이었다』‍ 부처는 절대로‍ 신통을 수행하는 걸‍ 용납하지 않았어요. 이건 높은 힘이 아니고‍ 아주 낮은 힘이죠. 오랜 기간 수행하면서‍ 여기 나오는 고행승처럼‍ 속죄를 하면‍ 많은 신통력이‍ 생길 수 있어요. 물 위를 걸을 수도 있죠.

부처가 한 번은‍ 강을 건너고자 했는데‍ 배가 있어서‍ 배를 타고‍ 건너려 했어요. 그때 부처 옆에 있던‍ 어떤 사람이‍ 능력을 과시하면서‍ 부처라면 강물을‍ 걸어서 건너야지‍ 왜 배를 타느냐고 했어요. 그러자 부처가 물었죠. 『얼마나 오래‍ 수행하셨소?』‍ 그러자 그는 그냥‍ 물 위를 걸었어요. 그 남자가요. 부처에게 말을 건‍ 남자는 물 위를 걸으며‍ 능력을 과시했죠. 그러자 부처가 물었어요. 『얼마나 오래‍ 수행해서‍ 이런 힘을 얻으셨소?』‍ 남자가 25년이라고 하자‍ 부처는 답했어요. 『난 25푼만 있으면‍ 배로 건널 수 있소』‍

부처는‍ 아이들 장난 같은‍ 이런 신통을 그다지‍ 높이 사지 않았어요. 부처는 목건련에게‍ 신통을 쓰지 말라고‍ 항상 말했건만‍ 목건련은‍ 그만두질 못했어요. 습관이 돼서죠. 부처를 따랐지만‍ 머리카락만 버리고‍ 아마 집도 버렸겠지만‍ 모든 걸 버리진 못했죠. 그래서 결국 더 높은‍ 신통력에 죽었어요. 더 높은 건 아니고‍ 다수의 상대가‍ 신통력을 모아서‍ 목건련에 대적했어요. 그래서 혼자서는‍ 그들의 단합된 힘에‍ 맞설 수 없었던 거죠. 그들은 크게‍ 분노하고 있었거든요. 아마 여러 번‍ 목건련의 웃음거리가‍ 됐거나 그에게 패해서‍ 분노가 치밀었겠죠. 그래서 결국‍ 여러 분파가 힘을 합해‍ 목건련을 죽였죠. 그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어요 여러분도 알죠. 내가 이미 말했죠.

『그러자 곧바로‍ 불덩이가 고샬락에게‍ 날아갔고, 고샬락은‍ 겁에 질려 소리치며‍ 마하비라에게 뛰어갔다. 「스승님, 살려주세요!‍ 이 고행승이 절 태워요」』마하비라에게 간 뒤‍ 『고샬락은 발치에 쓰러졌다. 고샬락의 가엾은 외침을‍ 들은 마하비라는‍ 마음이 움직였다』‍ 그는 늘 마음이 움직였죠. 곤경에 처하거나 가난하고‍ 약하고 궁핍한 이를 보면‍ 그는 늘 마음이 움직였죠. 놀랄 것도 없죠. 이렇게 굳이 안 적어도‍ 난 알 수 있어요. 여기에 안 적혀 있어도‍ 내가 말해줄 수 있어요. 그의 마음이 움직인 건‍ 처음도, 놀랄 일도 아녜요.

그래서 『뒤를 돌아보니‍ 불덩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하비라 승려의‍ 자비로운 가슴에서‍ 저절로, 시원한, 진정시키는 에너지 줄기가 흘러나왔다. 마하비라의 감로의 눈길이‍ 불덩이에 닿자‍ 불덩이가 사그라들었다. 분노했던 은둔자는‍ 불덩이가 소멸된 것을‍ 보고 놀랐다. 그는 마하비라가 자신보다 훨씬 더 위대하고 자애로운‍ 힘을 가졌음을 알았기에‍ 『용서하소서, 자비의‍ 화신이여!』라 말했다』‍ 『벌레집』과는‍ 대조적이죠. 네, 예의를 배워야 합니다.

부정적 말은 상처를 주고‍ 사람들을 화나게 합니다. 분노하진 않아도 적어도‍ 아프고 고통스럽죠. 그러니 정말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언사를 조심해야 해요. 필요하지 않으면 침묵해요. 친절하고 자비롭고‍ 아름답게 말할 수 없다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말을 아끼세요. 하지만 이 고행승은 정말‍ 교양 있는 사람이었죠. 그 당시엔 화를 냈지만‍ 고샬락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그를‍ 자극하지 않았다면‍ 화를 내지 않았을 거예요. 이미 경고를 했는데도‍ 고샬락이 그만두지 않았죠. 그래서 화가 났던 겁니다. 그런데도 그의 내면엔‍ 깨달음이 있었어요. 영적 배움이 있었죠. 그래서 자신보다 위대한 자를 알아봤을 때‍ 극진한 경의를 표한 거죠. 우리도 언제나‍ 이렇게 해야 합니다.

며칠 전 내가 공항에‍ 갔었는데… 공항엔‍ 늘 남녀 출가승이 있어서‍ 난 항상 공양할 돈을‍ 따로 챙깁니다. 그리고‍ 그들을 「스님」이나‍ 「마하라지」 「마타지」‍등의 호칭으로 부릅니다. 어떤 종교에 속한‍ 출가자인지에 따라 다르죠. 힌두교 출가자이면‍ 「마타지」나 「마하라지」‍ 「바부」나 「바바지』‍ 혹은 「스님」이라 해요. 불교 출가승이면‍ 최소한‍ 「스님」이라고 해야죠. 천주교의‍ 사제나 수녀를 보면‍ 늘 「신부님」이나‍ 「수녀님」이라 부르고요.

난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한 뒤 말하죠. 『필요한 걸 사시도록‍ 공양해도 될까요?』‍ 그런 뒤에 주면 그들은‍ 아주 아주 기뻐해요. 최선을 다해‍ 세상의 유혹과‍ 난관과 장애에 맞서며‍ 신께 다가가려 애쓰는‍ 이들에게는 그런 식으로‍ 말을 건네야 해요. 최선이 아닐지는 몰라도‍ 그들 입장에선 최선이죠. 그들의 상황과‍ 여력에 있어서는‍ 그게 최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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