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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의 추억, 4부 중 2부

2023-04-07
Lecture Language:English
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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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엔 재미있었어요. 젊고‍ 순진했으니까요. 이제 갓 출가해 두려움도‍ 없고 아무것도 몰랐죠!‍ 그래도 아직 살아 있어요!‍ 신은 순진한 이를‍ 보호하시죠! 그땐 정말‍ 순진했었어요. 상상이 가나요?‍ 정말 부처 시대 같았어요. 20세기 말이었고‍ 사람들은 초고층 건물을‍ 짓고 달에 가고 그랬는데 우린 텐트를 치고 같이 지냈고 머리를 밀고‍ 산속에서 감자나 구워 먹고살았죠. 그게 믿어지나요?‍ 그때가 지금까지 삶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난 지금도 그래요!‍

오, 맙소사, 그 시절이 여태껏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큰 건물, 큰 명상홀이 있고 방이 여럿인 큰 집 같은 것도 있지만 솔직히 그때만큼 좋지 않아요. 그땐 하루 한두 끼 먹는 게 다였죠. 잘 해서 먹는 것도 아니었죠.

때론 조리기구도‍ 변변치 않아서 판석을‍ 사용했는데… (석판이요)‍ 석판이요? 평평한 돌이요. 네, 강가에 널려 있었는데‍ 어떤 건 그리 평평하지‍ 않아도 다듬을 수 있었죠. 깨서 다듬으면‍ 좀 평평해져요. 약간 평평하면 됐죠. 뭔 상관이겠어요?‍ 그 위에 기름을 두르고‍ 쓱쓱 볶아서…‍ 먹으면 되는 거죠!‍ 아니면 바비큐를 하거나‍ 요리를 좀 했어요. 작은 주방 도구를 써서…‍ 한두 솥에 음식을 해서‍ 다들 같이 먹었죠. 그 후엔‍ 후식까지 있었어요!‍ 밥과 채소 같은 걸‍ 요리하고 남은‍ 뜨거운 숯과 재 속에‍ 고구마를 넣어두기만‍ 하면 되거든요. 요리를 끝내고‍ 식사를 마친 후에‍ 고구마를 꺼내면‍ 딱 알맞게 익어서‍ 후식처럼 먹을 수 있었죠.

그 당시 난 무알콜 와인도‍ 만들었어요, 비건‍ 무알콜 와인 기억해요?‍ 알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모르겠군요… 여러분은‍ 그다음 세대니까요!‍ 주스와 약초 같은 걸로‍ 무알콜 와인을 만들었는데‍ 맛이 환상적이었어요!‍

내가 사명을 시작한‍ 초창기엔 그렇게 살았었죠. 지금은 모르겠어요, 대만(포모사) 비자를 잃었어요. 잃은 건 아니지만, 당시엔‍ 매년 갱신을 해서‍ 계속 머물 수 있었는데‍ 한 번은 나갔다가‍ 제때 돌아오지 못했어요. 게다가 당시 내가 돌아오길‍ 바라지 않는 이들이 있었죠. 자기 가족들이‍ 나를 따랐기 때문에요. 그들은 고위직에 있었고‍ 내가 비자를 갱신할 때‍ 애를 먹였어요. 자기 가족 중 누군가‍ 내 밑으로 출가를 한 걸‍ 못마땅하게 생각했거든요. 그 출가자들은 이미‍ 다 큰 어른이었는데‍ 그들은 못마땅해했죠. 그래서 내가 여기 있는 거죠. 그때는 돌아갈 비자를‍ 받지 못했어요. 돌아가더라도 2주 밖에‍ 머물 수 없거나 혹은‍ 다시 비자를 신청해서‍ 1달 정도 머물거나…‍ 아, 그것도 성가셨어요. 그건 몇 년이 지난 후에‍ 있었던 일이고 아무튼…‍

초창기엔 재미있었어요. 내가 젊고‍ 순진했으니까요. 처음 출가를 해서 두려움도‍ 없고 아무것도 몰랐죠!‍ 그래도 아직 살아 있어요!‍ 신은 순진한 이들을‍ 보호하시죠! 그땐 정말‍ 순진했는데 상상이 가요?‍ 정말 부처님 시대 같았어요. 20세기 말이었고‍ 사람들은 초고층 건물을‍ 짓고 달에 가느니 하는데‍ 우리는 텐트에서 지내며‍ 머리를 밀고‍ 산에서 감자나 구워 먹으며 살았죠. 믿어지나요?‍ 여태까지 삶 중에서 그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래요!‍ 물론 많은 이들이‍ 나를 따랐고 그렇게‍ 사는 걸 좋아했는데‍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렸는지 모르겠어요. 돈 한 푼 없었는데요!‍ 어떻게 그랬을까요?‍ 생각이 나질 않네요.

뭔가 하긴 했어요. 이를테면 채소와 콩나물을 키웠는데‍ 어렵지 않았죠. 손이 많이 안 갔어요!‍ 욕조에 넣기만 하면 됐죠. 욕조를 닦고 거기에‍ 천을 깔고 콩을 넣었어요. 성긴 무명 천이나‍ 그물 천 같은 걸 깔았죠. 그 천 위에 콩을 깔고‍ 다시 한 겹, 또 한 겹‍ 올려서 욕조 가득‍ 콩을 깔았어요. 그런 다음엔 한 겹씩‍ 걷어다 팔았죠. 욕조 가득한 콩들이‍ 콩나물로 자랐어요. 매일 수돗물을 뿌려줬죠. 쉬웠어요, 그런 다음‍ 기억이 잘 안 나는데‍ 한 주 정도가 지나면‍ 그것들이 자라나서‍ 차례로 팔 수 있었죠. 맨 위층의 것들이‍ 더 잘 커서 먼저 팔았죠. 통통하고 크게 자라면‍ 파는 거예요. 그게 다였죠.

몇몇 출가승들은‍ 돈을 좀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 부양할 수 있었지만‍ 돈이 없는 사람도 있었죠. 우리에겐 작은 깡통‍ 같은 게 있었는데‍ 있는 돈은 전부‍ 거기에 넣고‍ 필요한 사람이‍ 꺼내가도록 했죠. 아주 간단했어요. 돈이 별로 없는 줄 알아서‍ 많이 가져가진 않았죠. 믿기지 않죠! 그래도‍ 살아남았어요! 세상에!‍ 그 강에서도 살아남고요!‍ 왜냐하면 여름엔‍ 우기가 있어서‍ 비가 많이 오거든요. 거기서 오래 야영생활을‍ 했는데 별일이 없었어요. 맙소사, 분명 비의 신이‍ 우리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을 참았을 거예요…‍ 아니면 다른 곳에서‍ 조용히 눈물을 흘려서‍ 대만(포모사)에 뿌릴‍ 눈물이 없었을 거예요!‍ 대중 앞에서 울면‍ 창피하니까 어디 숨어서‍ 몰래 울었나 봐요. 그래서 비의 신이‍ 대만(포모사)에 돌아왔을‍ 때는 남은 물이 없어서‍ 그 당시 내내 우리에겐‍ 별문제가 없었던 거죠. 물도 우리를 도와줬고‍ 산에 있는 나무들도요…‍ 정말 자유로웠어요!‍ 자유 그 자체였어요!‍ 그런 자유는‍ 이젠 느낄 수가 없어요.

그 당시에‍ 몇몇 종교 단체들이‍ 우릴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들렸어요. 우리가 새로 생긴 데다 뭘 하는지 모르니까요. 『뭐? 즉각 깨닫는다고!‍ 뭘? 어떻게?』‍ 그들은 평생을‍ 수행해왔고…‍ 엉덩이가 물러질 때까지‍ 앉아 있었어도‍ 깨달음이 뭔지도‍ 모르는데, 뜬금없이‍ 작고 젊은 여자인 내가‍ 나타나서 『지금 즉시‍ 깨달을 수 있다!』 하니‍ 참을 수가 없었던 거죠. 그래서 간혹 그들이‍ 문제를 일으켰지만‍ 말했듯이 난 무적이었죠. 난 「문제」라는 게 뭔지도‍ 몰랐고, 그런 것 따윈‍ 믿지도 않아서‍ 그들이 뭐라 하든‍ 상관도 하지 않았어요. 믿기지 않죠!‍ 나 자신의 선에 대해‍ 정말 확신이 강했어요. 이해하겠어요?‍ 내가 선하다는 걸‍ 이해 못 하다니 믿을 수가‍ 없었죠! 그랬어요. 자신감이 넘쳤어요!‍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됐죠. 20년이 지나자‍ 좀 다르게 보였어요.

맙소사.‍ 그때가 좋은 시절이었죠. 나는 너무 순진했고‍ 코브라와 오리의 차이도‍ 몰랐어요. 아마도 몰랐을 거예요!‍ 네, 예전에 산에서‍ 살았었기 때문에 그래요. 어디서나 뱀을 봤어요!‍ 인도에는 뱀이‍ 어디에나 있어요. 지네와 전갈들이‍ 나와 함께 잠을 자곤 해서‍ 아침에 깨어나 보면‍ 때로 침상 주변이나‍ 베개 밑에서 그들이‍ 기어 다니는 게 보였어요. 농담이 아니에요. 실제 있었던 일이에요!‍ 그들이 독이 있다는 걸‍ 모르진 않았어요. 흙집 옆방에 있던 사람이‍ 물려서 퉁퉁 붓고 병원에‍ 실려간 일이 있었거든요. 그들이 독성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어쩌겠어요?‍ 있는 게 그들뿐인데요. 유일한 친구들이죠!‍ 그들이 없다면‍ 더 외롭겠죠!‍

가끔… 돌이켜 보면‍ 믿을 수가 없어요. 난 정말 천하무적이 지나쳐‍ 거의 멍청하기까지 했어요!‍ 누가 그렇게 하겠어요!‍ 젊은 여자 혼자 밤에 산을‍ 돌아다니다니요, 손전등도‍ 없이요, 살 형편이 안 됐죠. 길도 안 보였어요!‍ 이런 보통 길과는 달라서‍ 감각으로 길을 찾아야 했죠. 가끔 다른 사원에 가든지‍ 다른 교사나 스승이나‍ 수행자들, 요기들을‍ 만나면 시간도 잊고 있다가‍ 돌아갈 땐 너무 늦은‍ 시각이 되곤 했거든요!‍ 그래도 집에 갔어요!‍ 믿어지나요?‍ 달빛도, 아무것도 없었는데‍ 대체 어떻게 돌아간 거죠?‍ 지금은 기억도 안 나지만‍ 어쨌든 가긴 갔어요!‍ 지금은 이해도 안 되지만‍ 온갖 바보 같은 짓을 했죠. 흙바닥에서‍ 자기도 했고요!‍ 침낭 하나와 파자마같이‍ 생긴 옷 두 벌 밖엔 없었죠. 펀자브 같은 옷이요. 정말 얇고 값싼 면으로‍ 된 튜닉과 바지가‍ 전부였는데도‍ 이렇게 살아남았죠!‍ 어떻게 그랬을까요?‍ 난 여자잖아요!‍ 어찌했는지 생각도 안 나요. 계획을 잘 짰었나 봐요.

하지만 그때처럼‍ 자유로웠던 적이 없어요. 강가에서‍ 텐트 생활할 때 말이에요. 여기보다는 기후가 좋았죠. 대만(포모사) 남부였어요. 때로는‍ 정말 추워지기도 했지만‍ 모르겠어요, 그 당시‍ 우린 괜찮았어요. (비가 적게 왔나요?)‍ 네? (비가 적게 왔나요?)‍ 비가 적게 온 것 같긴 한데‍ 텐트가 있으니 상관없었죠. 네 사람이 함께 있으면‍ 온도가 올라‍ 비에 젖어도‍ 순식간에 마르죠. 마법처럼요!‍ 우린 때로 여기저기‍ 헤매고 다녔어요. 진짜 유랑 생활이었죠!‍ 한곳에서 오래 머물 수가‍ 없었어요. 다양한 이유가 있었죠. 혹은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가 달라고 하면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떠났죠. 나중에 좀 알려지고 나자‍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오라고 하기도 했지만‍ 내게 딸린 사람이‍ 20, 30, 40여 명인데‍ 어떻게 갈 수 있겠어요?‍ 폐를 끼치면 안 되죠. 이미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에 그냥 야영을 하며‍ 저녁엔 강연을 하러 다녔죠.

강연을 하러 다니기‍ 시작한 초창기에도‍ 큰 장소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모두들 좋아했어요. 『모모 법사님』‍ 하면서요. 그들은 내가 남들처럼‍ 대만(포모사)에 절이‍ 있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강연하러 다니면‍ 당연히 사찰도 있고‍ 따르는 제자도‍ 많은 줄 알겠죠. 그들은 내가 강가에서‍ 야영 생활을 하며‍ 새해 전날 밤에도 감자를‍ 구워 먹었다는 걸 몰랐죠. 내겐 별다를 게 없었어요. 절이 있어야 할 필요도‍ 못 느꼈고‍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그저‍ 좋고 평상적으로 느껴졌죠. 여러분에게 집과‍ 직업이 있는 것처럼요. 어떤 이들은 몰래‍ 우리를 뒤쫓아와서 보곤‍ 『정말 희한하네! 어떻게‍ 이 스승은 절도 없이‍ 텐트에서 자고 감자나‍ 구워 먹고 지내지?』 했죠. 왜냐하면 그날은‍ 먹을 게 없었거든요. 신선한 채소나‍ 단백질 식품이 없었어요. 우린 그 당시에도 이미‍ 보시를 받지 않았어요. 있는 대로 쓰고‍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았죠. 그래서 감자나 오렌지‍ 등 뭐든 사서‍ 구워 먹었죠. 사탕수수, 오렌지, 사과, 고구마, 감자 등‍ 아무거나요. 정말 자유로운 삶이었죠!‍ 또 그럴 수 있을까요?‍ 다시 그러고 싶은 걸까요? 모르겠어요. 그런 삶은 이미 졸업한 것‍ 같은데 정말 모르겠어요. 그때 내가 원했던 건‍ 혼자 있는 것뿐이었죠!‍

대개는 내가… 나중에‍ 땅이 생긴 후엔 각자 텐트를‍ 하나씩 가지게 됐는데‍ 우리에게 호사스런 삶이었죠. 대나무를 엮어서 바닥을‍ 높이고 평평하게 한 뒤에‍ 그 위에 텐트를 쳤어요. 땅이 이전 강둑처럼‍ 평평하지 않았거든요. 거기는 산이라서‍ 바닥이 고르지 않아서‍ 우린 그곳을 연단처럼‍ 만들어야 했어요. 산이 평평하지 않아서‍ 땅을 높여야 했죠. 이제는 상황이 나아져서‍ 각자가 동굴을 갖고 있죠. 미아오리에 있는 동굴‍ 알죠? (아니요, 네)‍ 아무도 몰라요?‍ (본 적이 있습니다)‍ 본 적이 있어요?‍ 한 번 가 본 적이 있나요?‍ (그냥 바깥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들어가진 못하고요?‍ 못 들어가게 하던가요?‍ (그냥 문가에 서서 본 게‍ 다입니다)‍ 들어가려 하지 않았군요. 물론 그럴 필요는 없어요.

각자 취향대로‍ 동굴을 만들었어요. 물과 세면대가 있고‍ 위에 환풍기가 달려 있죠. 나도 하나 있어요. 대만(포모사)의 동굴은‍ 살기에는‍ 약간 습하지만‍ 지금은‍ 제습기가 있죠. 에어컨과 제습기가‍ 있는 동굴이에요. 때론 재미있어요…‍ 난로 같은 것도 있고요. 그때는‍ 산이 생기긴 했어도‍ 아직 동굴이 없던 시절이라‍ 난 항상 혼자서 산속에‍ 들어가고 싶어 했어요. 그래서 때로는‍ 사람들을 전부 데려가거나‍ 아니면 한두 사람만 데리고‍ 들어가곤 했죠. 전에 말했듯이 난‍ 그 동굴에 가곤 했어요. 나중에 나무가 그 앞으로‍ 떨어져 입구를 완전히‍ 막아버리기 전까지는요. 들어갈 순 있지만 가지들‍ 밑으로 기어가야 하고…‍ 그래서 『내가 들어가길‍ 원치 않는 것이면 좋아, 그만두겠어』라고 생각했죠. 그러고선 정말…‍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어요. 그 이후론 대만(포모사)에‍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죠. 여기저기서 일이 생겨서‍ 돌아갈 수 없었죠.

하지만 내 기억엔‍ 그때가 가장‍ 자유롭고 행복했어요. 맙소사, 정말 행복했죠!‍ 정말 홀가분했어요. 부담감도 없었고‍ 문제도 전혀 없었죠. 3, 4백 명이 살았고‍ 최소 2백 명 이상 됐는데도‍ 모두 한 몸 같았어요. 서로 간에‍ 아무 마찰이나‍ 갈등 없이 지냈죠. 일부는 요리를 하고‍ 일부는 어슬렁거리며‍ 기다리고 일부는 앉아서‍ 군침을 흘리고요. 각자 자기 일이 있었죠. 일부는 뜨개질을 했고‍ 일부는 텐트 청소‍ 등을 했고요. 일부는 그냥 나가서‍ 바위에 앉아 있기도 하고‍ 덤불 속에 들어가거나‍ 해먹에 눕기도 했어요. 정말 행복한 때였어요. 나중에 땅이 생겼고‍ 좀 더 안정적으로‍ 텐트를 치고‍ 동굴과 집까지도‍ 짓게 됐지만‍ 난 그때만큼‍ 행복하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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