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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칸트: 순수이성 비판 - 원소, 공간의 초월적 관념성, 2부 중 1부

2021-06-04
진행 언어:Eng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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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마누엘 칸트는 현대 서구 철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독일 철학자 중 한 명입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은 윤리와 형이상학 분야였습니다. 칸트는 1724년, 종교적 헌신과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강조하는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칸트는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비록 가족은 그가 라틴어와 종교 연구에 집중하기를 원했지만, 칸트는 더 합리적인 학문이라 생각하는 철학과 과학에 눈을 돌렸습니다.

그는 동프로이센에 있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였고, 결국 평생 거기서 가르쳤습니다. 당시 도덕의 영역에서 칸트의 저술은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여겨졌지요. 무엇보다 모든 인간은 존엄과 존경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또한 결과가 아닌 동기가 선의 가장 중요한 결정 요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행동에서 선이 그 동기라면 그 사람의 도덕성은 상황이 예상대로 되지 않더라도 선합니다. 칸트에게 도덕적 행동과 의무는 거의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이익과 관계없이 의무를 다하면 도덕적 가치가 있습니다. 그의 초월적 이상주의 원칙에서 칸트는 공간과 시간은 모든 경험을 구조화하는 『직관의 형태』에 불과하며 『물 자체』가 존재하고 경험에 기여하지만, 그것들은 경험의 대상과 구별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부터 경험의 대상은 단순한 『외형』에 불과하며, 결과적으로 사물의 본질 자체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철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인 『순수 이성 비판』을 소개하겠습니다.

초월적 원리론

1부, 초월적 감성학

1절, 공간에 대하여

공간 개념에 대한 형이상학적 규명

외적 감각(정신의 속성)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없는 것처럼 사물을 표현하고, 이 모든 것을 우주 공간에서 표현합니다. 여기에서만 그들의 모양, 치수, 서로를 결정하거나 결정할 수 있는 상호관계가 있습니다. 정신이 자기 자신이나 내적 상태를 사유하는 방법에 의한 내적 감각에서 영혼에 대한 직관은 실제로 그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내적 상태에서 사유가 가능한 결정된 형태가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의 내적 결정과 관련된 모든 것이 시간과 관련하여 표현됩니다. 시간에 대해선 우리가 공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내적 직관 이상의 것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시간과 공간은 무얼까요? 실제로 존재할까요? 아니면 그것들은 단지 사물의 관계나 측정일 뿐이며, 비록 그들이 직관의 대상은 아닐지라도 이런 사물에 똑같이 속하는 것이 아닐까요? 또는 그들은 단지 직관의 형태에만 속하며,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간과 공간의 정해진 속성이 없이 정신의 주관적인 구조에 속하며 모든 대상과 분리될까요?

이러한 사항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먼저 공간 개념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합니다. 설명하자면, 개념에 속하는 것을 나는 자세하진 않지만, 명확히 표현함을 의미합니다. 주어진 선험적인 개념의 표상을 포함할 때 설명은 형이상학적이 됩니다. 공간은 외부 경험에서 파생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떤 감각이 나 없이 외적인 대상과 관련하기 위해서 (즉 내가 있는 곳과는 다른 공간에 속한 어떤 것과 마찬가지로) 내가 그들을 단지 외부의 대상으로, 혹은 서로 가까이 있지만 분리된 장소에 있는 것처럼 표현하려면 공간의 표상이 선험적인 기반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공간의 표상을 경험을 통한 외부 현상의 관계에서 차용할 수는 없지만, 이와 반대로 이러한 외부 경험은 선험적인 공간 표상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공간은 모든 외적 직관의 밑바탕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선험적 표상입니다. 어떠한 사물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표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공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외적 표상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그 표상과 독립적으로는 다른 어떠한 현상도 생각할 수 없다면, 그것은 선험적인 표상이며 외적 현상의 밑바탕에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공간은 논증할 수 없으며, 우리가 말했듯이 사물의 관계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라 순수한 직관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오직 하나의 공간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복수의 공간들에 대한 진술은 단일한 공간의 부분들에 대한 진술입니다. 그러한 공간의 부분들이 단일한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오직 그 단일한 공간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수의 공간들을 매개로 발생하는 공간 개념은 이러한 개별적이고 단일한 공간이 선제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경험적이지 않은 선험적 직관이 공간에 대한 우리의 모든 개념의 밑바탕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이 기하학의 원칙, 가령 『삼각형의 두 변의 합은 나머지 한 변의 길이보다 크다』는 결코 선과 삼각형의 일반적 개념이 아니라 직관에서 추론된 것이며, 절대적 확신이자 선험적으로 추론한 것입니다.

공간은 무한한 양으로 표현됩니다. 이제 모든 개념은 실지로 표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어떠한 표상이 개념이라면, 그 표상은 자신을 공통적으로 포함하는 하위의 표상들을 무수히 많이 지닐 수는 있지만, 그것 자체가 무한의 양으로 표상될 순 없습니다. 하지만 공간을 무한하게 분할하더라도, 무한하게 분할된 표상들 역시 공간적으로 표상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원래 공간의 표상은 개념이 아닌 선험적인 직관입니다.

1절, 공간에 대하여

공간 개념에 대한 초월적 규명

초월적 규명에 의해 나는 원칙으로서 개념을 설명하며, 거기서 다른 종합적인 선험적 인식의 가능성을 식별할 수 있는지 말합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첫째 그러한 인식들이 주어진 개념에서 실제로 나와야 하며, 둘째 이러한 인식은 이 개념을 설명하는 주어진 방법의 전제하에서만 가능해야 합니다. 기하학은 공간의 속성들을 종합적으로, 선험적으로 규정하는 학문입니다.

그렇다면 공간에 대한 그러한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서 우리의 표상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그것은 본래 직관이어야 하며, 단순한 개념에서는 개념을 벗어나는 어떤 명제도 추론할 수 없지만, 기하학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 직관을 먼저 정신에서 발견해야 합니다. 사물에 대한 어떤 인식보다 먼저, 따라서 경험이 아닌 순수한 직관이어야 합니다.

기하학 원리는 항상 『우주는 오직 3차원만 가지고 있다』와 같이 필요성의 인식과 결합한 논리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명제는 경험적 판단일 수도, 그것의 결론일 수도 없지요. 어떻게 사물 자체보다 외적 직관이 먼저이며, 그 안에서 사물에 대한 우리의 개념이 선험적으로 결정되고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할 수 있을까요?

주체가 대상에 의해 영향을 받아 즉각적인 표상, 즉 직관을 획득하는 형상화의 능력은 결과적으로는 일반적으로 외부 감각의 형태로서만 해당 주제에 대한 입장을 갖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따라서 선험적 종합 학문으로서 기하학의 가능성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설명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비록 우리에게 외관상으로는 비슷할지 몰라도, 이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는 모든 설명 방식은 이 표시들 때문에 이것과 구별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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