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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 톨스토이(채식인)의 삶의 오솔길 2권: 생명의 병, 2부 중 2부

2020-03-24
진행 언어:Russian (Русский)
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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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톨스토이의 『삶의 오솔길』 2권에서 종교와 인생, 죽음 등에 관한 톨스토이 철학의 통찰력을 살펴보겠습니다.

생명의 병

2. 고통은 인간의 영적 삶을 북돋운다.

비록 인간이 죽음의 공포를 피하거나 무시할 수 있더라도 끔찍하고 목적 없으며 완전히 부당하고 피할 수 없는 고통 하나만으로도 삶의 이유에 대한 모든 이성적 의미를 부정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나는 훌륭하고 분명히 유익한 직업에 종사하는데 갑자기 병에 걸려서 일에 장애가 생기고 어떤 의미나 목적 없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철로의 나사가 녹슬어서 우연히 빠졌는데 사랑하는 어머니가 타고 있는 기차가 지나가며, 자녀는 바로 어머니 눈앞에서 치였습니다. 도시가 있는 바로 그곳에 지진이 일어나서, 이를테면 리스본이나 베르니의 죄 없는 사람들이 산 채로 묻히고 끔찍한 고통 속에 죽습니다. 왜 이러한 모든 일과 수많은 무의미하고 무서운 사고와 재난이 사람 마음에 공포를 일으킬까요? 그것에 의미가 있을까요?'

그 답으로 영적 삶을 인정하지 않는 이에게 이 모든 논쟁은 절대적으로 옳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인생은 사실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영적인 삶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의 삶은 단지 무의미하고 비참할 뿐입니다. 영적인 삶을 믿지 않는 사람은 단순한 논리적 결론을 내리고 필연적으로는 삶의 물질적 측면만 따르므로 삶을 단순한 육체적 존재로 간주하고 조금 더 사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인이 일꾼을 고용할 때 마음대로 일꾼을 산 채로 굽거나 약한 불에 굽거나 산 채로 껍질을 벗기고 그의 짐 마차를 빼앗고 아무 이유 없이 온갖 끔찍한 일을 할 수 있는 권리에 동의하길 요구하면 그가 수긍하며 다른 일꾼과 함께 일하려고 할까요?

만일 사람들이 정말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단순한 물질적 존재로 생명을 이해한다면 사방에서 자신이 보며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이러한 끔찍하고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아무도 이 세상에 살기를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불운에 불평하고 울부짖으면서도 여전히 계속 살아갑니다. 이러한 이상한 모순에 하나의 설명이 있습니다. 그들 마음 깊은 곳에는 삶이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으며 그들 고통은 언제나 필요하고 영적 삶의 행복을 위한 전제조건임을 압니다 사람이 인생의 의미를 보지 못할 때 고통을 혐오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살아가는데 이것은 그들 마음이 삶의 물질성을 주장하지만 가슴 속에는 영이 있으며 고통이 사람의 참된 행복을 빼앗을 수 없음을 아는 걸 보여줍니다.

3, 고통은 인간에게 삶에 이성적 태도를 유지할 것을 가르친다.

우리가 병이라 부르는 모든 슬픔은 우리 영혼을 진보하게 하며 이런 진보가 우리 삶인 것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슬퍼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을 낳은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불합리한 삶의 고통은 우리가 이성적인 삶의 필요성을 알도록 이끌어줍니다. 마치 밤의 어둠만이 하늘의 빛을 보여주듯이 그렇게 고통만이 삶의 참 목적을 보여줍니다. 외부의 장애물은 영이 강한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지 못합니다. 상처는 손상을 입거나 약하게 되는 것이며 비록 장애로 인해 화가 나거나 무력해져 동물에게 상처를 입힐 수는 있지만 영이 강건한 사람은 모든 장애 안에서 도덕적 아름다움과 용기가 커진 것을 발견합니다.

젊고 경험이 없는 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을 알지 못하며 우리가 슬픔이라 부르는 모든 것이 진짜로 좋은 것이고 우리가 얼마나 굳건한지 알고 인정하게 하는 시험임을 모릅니다. 만일 우리가 굳건하지 않다면 굳세게 되기 위해 시험이 필요합니다. 저는 고통을 겪은 후에야 인간 영혼에서 서로 밀접한 유사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고통받는 모든 이와 그 고통을 완전히 나누자마자 여러분은 그걸 이해하게 됩니다. 사실은 그 이상인데 여러분 마음이 명료해지며 지금까지 잘 모르던 사람들의 상황과 성취가 분명해지고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명확하게 보게 됩니다. 신은 위대하고 우리를 깨닫게 합니다. 무엇으로 깨닫게 할까요? 우리가 도망가고 숨는 바로 그 슬픔입니다. 슬픔과 고통 속에서 우리는 어떤 책에도 찾을 수 없는 지혜의 낟알을 찾게 됩니다.

신께서 직접 보내신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아는 그런 스승을 신께서 우리에게 보내셨다면 그들에게 기꺼이 기쁘게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스승을 삶의 어려움과 모든 변천 속에서 만납니다. 신의 섭리의 모든 출현은 모든 피조물에게 이로울 뿐 아니라 나타난 바로 그 시기에도 이롭습니다. 고통의 유익한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성적 삶, 즉 진정한 삶을 시작하지 않은 것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신에게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 고통은 나를 악에서 구하도록 신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주인은 불타는 울타리 안에서 동물을 몰아내려고 채찍을 써서 구하려 하지만 동물은 채찍질을 피하려고 기도합니다. 우리가 불행으로 여기는 것은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했지만 대부분은 좋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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